라벤더는 향수에서 가장 친숙한 향 중 하나입니다. 깨끗하고 산뜻하며, 여름 햇살에 마른 흰 리넨 같은 향입니다.1 그런데 이 익숙한 향 하나에도 서로 다른 종과 산지, 증류의 역사가 얽혀 있습니다. 이 페이지는 보랏빛 밭이 향료가 되는 길을 따라갑니다. 라벤더가 향수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로마 목욕탕부터 프로방스까지의 이야기는 문화 페이지와 역사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민트과의 작은 관목
라벤더(Lavandula)는 민트와 같은 꿀풀과(Lamiaceae)에 속하는 작은 관목입니다. 회록색 잎과, 가느다란 줄기 위에 올라오는 보랏빛 꽃이삭이 특징입니다.2 잎·줄기·꽃 모두 향이 있지만, 향료로 쓰는 것은 주로 꽃과 꽃대입니다. 향은 조금 소나무 같고 톡 쏘면서도 은은히 과일 같은 결을 함께 가집니다.2
세 개의 라벤더 — 트루, 라반딘, 스파이크
"라벤더"라는 한 단어 뒤에는 사실 여러 종이 있습니다.
트루 라벤더(Lavandula angustifolia) — 잉글리시 라벤더라고도 불리는, 향료의 기준이 되는 종입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플로럴 향을 내고, 리날로올과 리날릴 아세테이트가 풍부하며 캠퍼(장뇌) 함량이 매우 낮습니다(대개 0~0.6%). 진정·이완과 연결되는 부드러운 라벤더가 바로 이 종입니다.3
**라반딘(Lavandula × intermedia)** — 트루 라벤더와 스파이크 라벤더의 자연 교배종입니다. 더 크고 튼튼하게 자라 수확량이 많고 값이 쌉니다. 대신 캠퍼 함량이 6~10%로 높아 향이 더 강하고 장뇌 같은 결이 돕니다.3 오늘날 향료·비누·생활용품에 쓰이는 라벤더 향의 상당 부분이 이 라반딘입니다.
스파이크 라벤더(Lavandula latifolia) — 1,8-시네올과 캠퍼가 많아, 강하고 약초 같은 톡 쏘는 향을 냅니다. 트루 라벤더의 달콤함은 덜하고 자극적인 편이라, 진정용보다는 다른 용도로 쓰입니다.3 같은 라벤더라도 어떤 종인가에 따라 "부드러운 플로럴"과 "약초 같은 샤프함" 사이를 오갑니다.
화가의 용매가 된 스파이크 라벤더
스파이크 라벤더는 향료를 넘어 미술에도 쓰였습니다. "아스픽(aspic) 오일"이라 불리는 스파이크 라벤더 오일은, 르네상스 이래로 유화 물감을 개고 씻는 용매로 쓰여 온 기록이 있습니다.4 캠퍼가 많아 용해력이 강하면서도 테레빈유(터펜틴)보다 독성이 적어, 오늘날에도 일부 화가들이 저독성 용매로 씁니다.4 같은 라벤더 속이라도 부드러운 트루 라벤더가 향수로 가는 동안, 샤프한 스파이크 라벤더는 화가의 붓 곁으로 간 셈입니다.
증류로 얻는 오일
라벤더 오일은 꽃과 꽃대를 수증기 증류해 얻습니다. 꽃처럼 열에 약하지 않아 증류가 잘 되고, 이 방식은 오래전부터 프로방스의 오래된 증류기(알렘빅, alembic)로 이어져 왔습니다.5 재스민이나 장미와 달리 라벤더는 기계 수확이 가능하고 수율도 높아서, 상대적으로 대량 생산이 쉬운 편입니다. 한편 증류 대신 용매로 뽑는 라벤더 앱솔뤼도 있는데, 이는 꽃을 헥산 같은 용매로 추출해 콘크리트를 얻고 알코올로 다시 씻어 만듭니다. 증류 오일보다 향이 더 진하고 복합적이며 오래가서, 고급 향수의 재료로 귀하게 쓰입니다.6
언제 베느냐가 향을 정한다
라벤더는 수확 시기도 향을 좌우합니다. 꽃이 막 피기 시작할 무렵과 완전히 핀 뒤의 향이 다르고, 하루 중에도 아침과 한낮의 향이 미세하게 다릅니다. 정유 함량과 성분 비율이 개화 단계에 따라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배자는 밭 전체가 알맞게 물들었을 때, 이슬이 마르고 향이 가장 안정된 시간을 골라 벱니다. 프로방스에서 라벤더 수확이 한여름의 정해진 며칠에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같은 밭, 같은 품종이라도 "언제 베었는가"가 그해 정유의 결을 가릅니다.
향을 만드는 분자
라벤더 향의 중심은 리날로올(linalool)과 리날릴 아세테이트(linalyl acetate)이고, 여기에 소량의 시네올(cineole)이 더해집니다.7 리날릴 아세테이트는 라벤더에 부드럽고 달콤한 결을 주는 에스터로, 베르가못의 상큼함과도 통하는 성분입니다.8 리날릴 아세테이트가 많을수록 부드럽고 달콤한 플로럴에 가깝고, 시네올과 캠퍼가 많을수록 약초 같고 샤프한 결이 강해집니다. 앞서 본 종별 차이가 바로 이 성분 비율의 차이입니다. 조향에서는 이 두 분자를 합성으로도 만들어, "라벤더"라는 이름이 천연 오일뿐 아니라 리날로올·리날릴 아세테이트 계열 합성 소재를 함께 가리키기도 합니다.7
라벤더 워터와 콜로뉴
라벤더 증류에서는 정유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증류 과정에서 향을 머금은 물, 즉 라벤더 워터(하이드로솔)도 함께 얻어집니다. 향은 정유보다 옅지만 부드러워서, 오래도록 화장수·룸 스프레이·리넨 워터로 쓰여 왔습니다. 라벤더는 또한 오드콜로뉴와 향수 비누의 핵심 재료였습니다. 시트러스·로즈마리와 어우러진 라벤더는 "갓 씻은 듯한" 깨끗한 향의 뼈대를 이루었고, 이 조합이 클래식한 콜로뉴의 상쾌함을 만들었습니다. 정유, 워터, 콜로뉴, 비누까지 — 라벤더는 한 식물에서 여러 형태의 향 제품이 나오는 폭넓은 원료입니다.
값이 수요로 정해지는 원료
라벤더는 귀한 향이면서도 비교적 값이 쌉니다. 한 조향가의 비교에 따르면, 목련 꽃 정유 1킬로그램이 약 935달러(2011년 기준)일 때 라벤더 정유는 약 115달러였습니다.9 흥미로운 점은, 라벤더가 싼 이유가 노동력이 적게 들어서가 아니라 기계 수확과 높은 수율 덕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즉 라벤더의 값은 노동 비용보다 수요에 따라 정해집니다.9 재스민이 손노동 때문에 비싼 것과 정반대의 사례입니다.
프로방스에서 불가리아로
라벤더의 진짜 뿌리는 프랑스 오트프로방스(Haute Provence)의 흙에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향료 산업에 라벤더 정유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곳은 불가리아입니다.1 프로방스가 라벤더의 상징적 고향으로 남아 있는 동안, 실제 대량 공급의 무게중심은 옮겨간 셈입니다. 산지가 바뀌어도 "깨끗하고 산뜻한 라벤더"라는 향의 정체성은 이어집니다.
높이가 만드는 품질
라벤더의 품질은 어디서 자라느냐에 크게 좌우됩니다. 특히 고도가 중요합니다. 프로방스에서도 높은 산비탈에서 자란 트루 라벤더가 더 곱고 정교한 향을 낸다고 여겨집니다. 서늘한 고지대일수록 캠퍼가 적고 리날릴 아세테이트가 풍부한, 부드럽고 섬세한 결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저지대나 교배종 라반딘은 향이 더 강하고 거칠지만 수확량이 많습니다. 그래서 향료 회사들은 최고급 라벤더를 얻기 위해 특정 고지대 밭과 재배자를 따로 관리하기도 합니다. 이런 품질을 지키기 위한 제도도 있어서, 프랑스에서는 "오트프로방스 라벤더 정유(Huile essentielle de lavande de Haute-Provence)"가 1981년부터 원산지 명칭(AOC)으로 보호됩니다. 이 명칭을 쓰려면 오직 Lavandula angustifolia의 꽃대를 수증기 증류해 얻은 정유여야 합니다.10 같은 트루 라벤더라도 "어느 높이에서 자랐는가"가 향의 격을 가르는 셈입니다.
규제와 안전
라벤더 오일의 주성분인 리날로올은 유럽연합 화장품 규정이 정한 향료 알레르겐 표기 대상입니다. 그래서 라벤더가 많이 든 향수나 비누의 성분표에서 리날로올이라는 이름을 자주 보게 됩니다.11 이는 원료에 자연히 들어 있는 성분을 알리기 위한 표기이며, 라벤더 향이 곧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
[1]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라벤더 단원. 라벤더를 "향긋하고 신선하며 샤프하고 생기 있는, 흰 리넨에 내리쬔 햇살 같은 향"으로 묘사하고, 오늘날 불가리아가 향료 산업의 주요 라벤더 정유 공급지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2] Ken Druse · Ellen Hoverkamp, The Scentual Garden, 라벤더 단원. 라벤더가 꿀풀과(민트과)의 낮은 관목이며 회록색 잎과 꽃대 위 꽃이삭을 가지고, 소나무 같고 톡 쏘면서 은은히 과일 같은 향을 낸다고 설명합니다.
[3] Island Lavender·AromaWeb 등 라벤더 종 비교 자료. 트루 라벤더(L. angustifolia)의 낮은 캠퍼·부드러운 플로럴, 라반딘(L. × intermedia)의 높은 수확량과 6~10% 캠퍼, 스파이크 라벤더(L. latifolia)의 높은 시네올·캠퍼와 약초 같은 향을 정리합니다. https://www.aromaweb.com/articles/lavender-essential-oil-differences.php
[4] Natural Pigments, "Lavender Spike Oil: Source, History and Use in Painting." 스파이크 라벤더 오일("아스픽 오일")이 르네상스 이래 유화 용매로 쓰였고, 캠퍼가 많아 용해력이 강하면서 테레빈유보다 독성이 적어 오늘날에도 저독성 용매로 쓰인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naturalpigments.com/artist-materials/spike-oil-painting
[5]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라벤더 단원. 프로방스의 오래된 증류기(알렘빅)와 라벤더 증류의 오랜 전통을 전합니다.
[6] Wikipedia, "Lavender oil"·"Lavandula". 라벤더 앱솔뤼가 꽃을 용매로 추출해 콘크리트를 얻고 알코올로 씻어 만들며, 증류 오일보다 향이 진하고 복합적이라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avender_oil
[7]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용어 "lavender". 라벤더가 라벤더·라반딘 오일뿐 아니라 리날로올·리날릴 아세테이트, 소량의 시네올 같은 합성 소재를 함께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8] PubChem, "Linalyl acetate." 리날릴 아세테이트가 라벤더에 부드럽고 달콤한 결을 주는 에스터이며 베르가못 등에도 들어 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pubchem.ncbi.nlm.nih.gov/compound/Linalyl-acetate
[9] Jean-Claude Ellena, Perfume: The Alchemy of Scent, 원료 비용 단원. 라벤더 정유가 목련 정유보다 훨씬 싸며(약 115달러 대 935달러, 2011년 기준), 기계 수확과 높은 수율 덕분에 값이 노동 비용보다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고 설명합니다.
[10] "Huile essentielle de lavande de Haute-Provence AOC," Wikipédia. 오트프로방스 라벤더 정유가 1981년부터 AOC로 보호되며, Lavandula angustifolia의 꽃대를 수증기 증류한 정유여야 이 명칭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fr.wikipedia.org/wiki/Huile_essentielle_de_lavande_de_Haute-Provence_AOC
[11] European Commission, "Fragrance allergens in cosmetic products" 및 EU Regulation (EC) No 1223/2009. 리날로올을 포함한 향료 알레르겐이 일정 농도를 넘으면 성분표에 표기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https://single-market-economy.ec.europa.eu/sectors/cosmetics/cosmetic-products-specific-topics/fragrance-allergens-labelling_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