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제비꽃)은 향수에서 가장 신기한 향 중 하나입니다. 맡는 순간 파우더리하고 달콤하게 퍼지지만, 몇 초 지나면 감쪽같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향수의 바이올렛은 거의 대부분 꽃이 아니라 하나의 합성 분자, 그리고 잎에서 옵니다. 이 페이지는 이 사라지는 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따라갑니다. 바이올렛이 향수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제비꽃의 재배·무역사는 역사 페이지에서, 상징과 예술은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비올라 오도라타
향료에서 말하는 제비꽃은 주로 비올라 오도라타(Viola odorata), 봄에 피는 여러해살이 향제비꽃입니다.1 제비꽃과(Violaceae)에 속하며, 향을 품은 부분은 꽃과 잎입니다.2 그 향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워, 아니스(팔각) 같은 결에 갓 벤 건초, 포도 젤리, 꿀, 그리고 립스틱 같은 파우더리함이 함께 있습니다.1 특히 꽃잎이 겹으로 피는 파르마 제비꽃(Parma violet)은 더 짙고 파우더리한 향으로 이름난 원예 품종입니다.1
왜 천연 꽃은 거의 안 쓸까
향수에는 천연 제비꽃 꽃 추출물이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진짜 제비꽃 꽃에서 뽑은 정유·추출물은 수율이 극히 낮아, 옛 향료서도 진짜 제비꽃 향료를 "가장 값비싼 향"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3 1893년 이전까지 제비꽃 향수는 오직 비올라 오도라타의 꽃과 잎 추출물에 의존했고, 그 재료가 워낙 귀하고 비싸 제비꽃 향은 귀족의 사치였습니다.4 그래서 오늘날 조향사들은 천연 꽃 대신 합성 분자로 바이올렛의 파우더리한 결을 냅니다.
이오논 — 1893년의 합성
바이올렛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이오논(ionone)의 합성입니다. 1893년, 독일 하르만 & 라이머(Haarmann & Reimer, 오늘날 시므라이즈)의 페르디난트 티만과 파울 크뤼거가 여러 해의 연구 끝에 이오논을 합성해 냈습니다.5 합성은 두 단계로, 시트랄과 아세톤을 알돌 축합해 사슬 모양의 슈도이오논(pseudoionone)을 만든 뒤, 산으로 고리화해 알파-이오논과 베타-이오논의 혼합물을 얻습니다.5 이 합성 덕분에 그전까지 매우 비쌌던 바이올렛 향이 거의 100만분의 1 수준으로 값싸졌고,6 제비꽃은 20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이 되었습니다(자세한 유행은 역사 페이지 참고).
알파와 베타, 그리고 메틸 이오논
이오논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고리화에 쓰는 산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는데, 약한 산(인산·푸마르산)은 알파-이오논을, 진한 황산은 베타-이오논을 더 만듭니다.5 알파-이오논은 파우더리하고 우디-플로럴하며 은은한 라즈베리 같은 과일결을 지니고, 베타-이오논은 신선한 비올라 오도라타 꽃잎의 먼지 같은 보랏빛 향을 그대로 지녀 "진짜 제비꽃 분자"라 불립니다.7 여기에 메틸이오논 계열까지 더하면, 조향사는 더 꽃 같거나 더 우디하거나 더 파우더리한 바이올렛을 골라 낼 수 있습니다.8 하나의 "바이올렛" 뒤에 서로 조금씩 다른 분자들의 팔레트가 있는 셈입니다. (이오논은 아이리스의 핵심 분자 이론(irone)과 가까운 친척으로, 두 향이 자주 함께 쓰입니다 — 아이리스 원료 페이지 참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향
바이올렛의 가장 유명한 특징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향입니다. 이오논 같은 분자는 후각 수용체를 빠르게 포화시켜, 향을 몇 초 맡은 뒤 신호가 잠시 사라졌다가 코가 회복되면 다시 감지됩니다.9 이는 칼슘 이온 유입이 수용체를 일시적으로 둔감하게 만드는 "후각 순응(olfactory fatigue)" 현상으로, 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코가 잠깐 쉬는 것입니다.9 향이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특성이, 바이올렛을 다루기 까다롭지만 매혹적인 재료로 만듭니다.
조향의 언어가 된 이오논
조향사 장클로드 엘레나는 "베타-이오논의 향이 20세기 말까지 곧 제비꽃 향과 동의어였다"고 적었습니다.10 그러면서 그는 이 익숙한 분자를 다르게 써서, 불가리 오 파르퓌메 오 테 베르(Eau parfumée au thé vert)에서 베타-이오논을 헤디온과 결합해 "차(茶) 향" 어코드를 만들어 냈고, 이 향수는 하나의 원형이 되었습니다.10 같은 분자라도 조향사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뀐다는 것을, 이오논이 잘 보여 줍니다.
꽃과 잎 — 두 개의 바이올렛
바이올렛에는 사실 두 개의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오논에서 오는 달콤하고 파우더리한 꽃의 향이고, 다른 하나는 초록빛에 물기가 도는 차갑고 살짝 후추 같은 잎(violet leaf)의 향입니다. 잎 향의 대표 분자인 메틸 헵틴 카보네이트(MHC)는 1903년에 합성되었는데, 아세틸렌처럼 탄소-탄소 삼중결합을 가진 독특한 구조라 톡 쏘는 초록 향을 냅니다.11 여기에 오이 같은 초록 알데하이드가 더해져, 천연 바이올렛 잎 앱솔뤼는 오이·풀·금속성이 섞인 서늘한 초록 향을 냅니다.12 그래서 "바이올렛"이라 해도, 파우더리한 꽃인지 초록빛 잎인지에 따라 향이 전혀 다릅니다.
향수에서의 쓰임
바이올렛은 향에 파우더리한 부드러움(꽃)과 서늘한 초록빛(잎)을 더하는 재료로 쓰이며, 세기가 강하지 않아 다른 향을 감싸는 데 좋습니다. 아이리스·로즈와 만나면 파우더리한 립스틱 같은 향을, 시트러스·오이와 만나면 서늘한 초록 향을 만듭니다. 바이올렛이 다른 노트와 어떻게 어울리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주
[1] Ken Druse · Ellen Hoverkamp, The Scentual Garden(제비꽃 단원). Viola odorata가 봄에 피는 여러해살이 향제비꽃이며 향이 아니스·건초·포도 젤리·꿀·립스틱 같은 결을 지니고, 파르마 제비꽃이 겹꽃의 파우더리한 품종이라고 설명합니다.
[2] "Viola odorata," Wikipedia. 향제비꽃이 제비꽃과(Violaceae)의 여러해살이풀이며 꽃과 잎에 향이 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Viola_odorata
[3] George W. Askinson, Perfumes and Their Preparation(제비꽃 단원). 진짜 제비꽃 꽃에서 뽑은 향료가 수율이 극히 낮아 가장 값비싼 향 중 하나이며 극도로 희석해야 제비꽃 향이 살아난다고 설명합니다.
[4] Wikipedia, "Viola odorata"·"Ionone". 1893년 이전까지 제비꽃 향수가 오직 비올라 오도라타의 꽃·잎 추출물에 의존했고, 재료가 귀하고 비싸 제비꽃 향이 귀족의 사치였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onone
[5] Wikipedia, "Ionone". 1893년 하르만 & 라이머의 페르디난트 티만과 파울 크뤼거가 시트랄과 아세톤을 축합해 슈도이오논을 만든 뒤 산으로 고리화해 알파·베타-이오논을 합성했고, 쓰는 산에 따라 알파/베타 비율이 달라진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onone
[6]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바이올렛·이오논 단원). 1893년 이오논 합성으로 바이올렛 향이 약 100만분의 1로 값싸졌고 20세기 초 가장 인기 있는 향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7] Wikipedia, "Ionone". 알파-이오논이 파우더리·우디플로럴하며 라즈베리 같은 과일결을, 베타-이오논이 비올라 오도라타 꽃잎의 먼지 같은 보랏빛 향을 지녀 "진짜 제비꽃 분자"로 불린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onone
[8] PubChem, "beta-Ionone." 베타-이오논이 제비꽃 향을 내는 대표 성분이라는 점을 정리합니다. 메틸이오논 등 관련 분자들과 함께 조향에서 폭넓게 쓰입니다. https://pubchem.ncbi.nlm.nih.gov/compound/beta-Ionone
[9] "Olfactory fatigue," Wikipedia. 이오논 같은 분자가 후각 수용체를 빠르게 포화시켜 향이 잠시 사라졌다 회복되는 순응 현상이 칼슘 이온에 의한 수용체 둔감화 때문이며, 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코가 잠시 쉬는 것이라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Olfactory_fatigue
[10] Jean-Claude Ellena, The Diary of a Nose. 베타-이오논의 향이 20세기 말까지 곧 제비꽃 향과 동의어였으며, 엘레나가 이를 헤디온과 결합해 불가리 Eau parfumée au thé vert의 차 향 어코드를 만들어 원형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11]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바이올렛 잎 단원). 바이올렛 잎 향의 분자 메틸 헵틴 카보네이트(MHC)가 1903년 합성됐고 아세틸렌 같은 삼중결합의 톡 쏘는 초록 향이며, 천연 바이올렛 잎 앱솔뤼가 비싼 사치 재료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12] Wikipedia, "Ionone"·"Viola odorata". 바이올렛 잎 앱솔뤼가 오이·풀·금속성이 섞인 서늘한 초록 향을 내며, 파우더리한 꽃 향과 뚜렷이 다르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Viola_odorat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