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역사

맨해튼과 바꾼 섬 — 너트멕의 역사

너트멕(육두구)이 지나온 역사 — 로마의 화폐가 된 견과, 몰루카의 반다 제도라는 유일한 산지, 네덜란드의 잔혹한 독점과 학살, 맨해튼과 맞바꾼 섬 런, 독점을 깬 피에르 푸아브르, 그리고 향신료 섬 그레나다까지 너트멕 무역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넛메그 향수 노트 일러스트

너트멕의 역사는 향신료 하나가 얼마나 큰 욕망을 부를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한때 이 작은 견과는 오직 몇 개의 작은 섬에서만 났고, 그 섬을 차지하려는 다툼은 학살과 전쟁, 그리고 맨해튼을 맞바꾸는 거래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페이지는 너트멕이 지나온 길을 따라갑니다. 너트멕이 향료가 되는 과정은 원료 페이지에서, 너트멕에 얽힌 문화는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로마의 화폐가 된 견과

너트멕은 고대 로마 시대에 이미 매우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로마인들은 때때로 너트멕을 통째로 화폐처럼 쓰기도 했습니다.1 작은 견과 하나가 돈의 구실을 할 만큼, 너트멕은 값지고 특별한 물건이었습니다. 이런 귀함은 중세와 근대까지 이어져, 너트멕은 오래도록 부와 사치를 상징하는 향신료로 남았습니다.

아랍 상인을 거쳐 유럽으로

너트멕이 유럽에 알려진 것은 아랍 상인들을 통해서였습니다. 6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너트멕을 콘스탄티노플로 들여왔고, 12세기 무렵에는 유럽 전역에 퍼진 것으로 전해집니다.2 원산지가 멀고 값이 비쌌던 탓에, 너트멕은 유럽 귀족의 지위를 드러내는 사치품이 되었습니다. 부유한 여행자들은 자기만의 휴대용 너트멕 강판을 지니고 다니며 음식에 갈아 넣을 정도였습니다(자세한 이야기는 문화 페이지 참고).2

흑사병을 막는다 믿었던 향

값비싼 너트멕은 향신료이자 약이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너트멕이 감기뿐 아니라 흑사병 같은 무서운 병까지 막아 준다고 믿었습니다. 흑사병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이 너트멕을 비롯한 향신료를 채운 마스크를 쓰고 그 향이 병을 막아 주기를 기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3 좋은 향에 병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값비싼 너트멕의 수요를 더욱 키웠습니다.

유일한 산지 — 몰루카의 반다 제도

너트멕이 그토록 귀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너트멕과 그 껍질인 메이스는 모두 육두구나무(Myristica fragrans)의 열매에서 나오는데, 이 나무는 인도네시아 동부의 몰루카(말루쿠) 제도, 특히 작은 화산섬들인 반다 제도(Banda Islands)에서만 자랐습니다.4 세계의 모든 너트멕이 이 몇 개의 작은 섬에서 나왔던 것입니다.5 원산지가 이렇게 좁았기에, 반다 제도를 손에 넣는 것은 곧 세계 너트멕 무역을 손에 쥐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사실이 훗날 이 섬들을 피비린내 나는 다툼의 무대로 만듭니다.

네덜란드의 잔혹한 독점

16세기 포르투갈에 이어, 17세기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반다 제도의 향신료 무역을 노렸습니다. 네덜란드는 너트멕 독점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162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총독 얀 피터르스존 콘(Jan Pieterszoon Coen)은 독점을 강제하기 위해 반다 제도 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고, 섬의 인구는 약 1만 5천 명에서 1천 명 안팎으로 줄었습니다.6 향신료 하나를 독점하려는 욕망이 한 사회를 거의 통째로 무너뜨린 것입니다. 너트멕의 향긋함 뒤에는 이런 어두운 역사가 있습니다.

너트멕 전쟁과 맨해튼과 바꾼 섬 런

너트멕이 나는 반다 제도의 작은 섬 런(Run)은 오래도록 영국과 네덜란드가 다투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너트멕은 무게로 따지면 금보다 비쌌기에, 이 작은 섬을 둘러싼 두 나라의 다툼은 이른바 "너트멕 전쟁"으로까지 번졌습니다.7 1667년 브레다 조약에서 두 나라는 서로의 영토를 정리했는데, 네덜란드는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였던 뉴암스테르담(오늘날의 맨해튼)을 영국에 넘기는 대신, 너트멕이 나는 런 섬을 지키는 쪽을 택했습니다.8 지금의 눈으로 보면 맨해튼과 작은 향신료 섬을 맞바꾼 셈인데, 당시 너트멕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결코 이상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9

독점을 깬 남자 — 피에르 푸아브르

네덜란드의 독점은 뜻밖의 인물이 깨뜨렸습니다. 이름부터 "피에르 푸아브르(Pierre Poivre)", 곧 '피터 페퍼(후추)'라 불린 이 프랑스인은, 1770년 무렵 반다 제도 바깥에서 너트멕 묘목 수천 그루를 몰래 빼내어 프랑스령 모리셔스 섬으로 옮겨 심는 데 성공했습니다.10 이 밀반출로 너트멕나무가 반다 제도 밖에서도 자라게 되면서, 100년 넘게 이어진 네덜란드의 독점은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향신료를 한곳에 가두려는 시도가 결국 실패로 돌아간 셈입니다.

오늘날 — 향신료 섬 그레나다

너트멕나무가 여러 열대 지역으로 퍼지면서, 너트멕은 차츰 값이 내려 누구나 쓸 수 있는 향신료가 되었습니다. 1843년 카리브해의 그레나다에 너트멕이 들어온 뒤, 이 섬은 "향신료 섬(Spice Isle)"이라 불리며 세계 너트멕의 약 20%를 생산하는 산지가 되었습니다. 다만 세계 생산의 약 75%는 여전히 원산지 인도네시아가 차지합니다.11 한때 학살과 전쟁, 맨해튼과의 거래를 부른 견과가 이제 마트의 향신료 코너에 놓이게 된 것은, 그 자체로 너트멕 무역의 역사가 남긴 결과입니다.

향에 담긴 너트멕

향수에서도 너트멕은 오래도록 쓰여 온 재료입니다. 조향에서 너트멕은 흑후추·생강·정향과 함께 대표적인 "스파이시 노트"로 분류되며, 오리엔탈 계열의 향에 둥근 온기를 더하는 재료로 사랑받습니다.12 한때 제국을 다투게 한 견과의 향이, 오늘날 향수 속에서 조용한 따뜻함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향수에서 너트멕이 어떤 향으로 감지되고 어떻게 쓰이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1] Mandy Aftel, Fragrant(너트멕 단원). 너트멕이 고대 로마인들에게 매우 귀하게 여겨져 때때로 통째로 화폐처럼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2] JuneShine, "The History of Nutmeg." 6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너트멕을 콘스탄티노플로 들여왔고 12세기 무렵 유럽에 퍼졌으며, 너트멕이 귀족의 지위를 드러내는 사치품이자 휴대용 강판을 지닐 만큼 값진 향신료였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juneshine.com/blogs/news/the-history-of-nutmeg

[3] Tasting Table, "10 Bizarre And Disturbing Facts About Nutmeg." 중세 유럽에서 너트멕이 흑사병 같은 병을 막아 준다고 믿어져, 의사들이 너트멕 등 향신료를 채운 마스크를 썼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https://www.tastingtable.com/1923764/facts-about-nutmeg/

[4] George W. Askinson, Perfumes and Their Preparation(메이스·너트멕 단원). 너트멕과 그 껍질 메이스가 모두 Myristica fragrans의 열매에서 나오며, 이 나무가 인도양 군도 특히 몰루카 제도에서 재배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5] "Nutmeg," Wikipedia. 너트멕과 메이스의 원산지가 인도네시아 말루쿠의 반다 제도이며, 오랫동안 세계의 너트멕이 이 섬들에서만 났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utmeg

[6] "Banda Islands," Wikipedia. 1621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총독 얀 피터르스존 콘이 너트멕 독점을 강제하며 반다 제도 주민을 학살·노예화해 인구가 약 1만 5천 명에서 1천 명 안팎으로 줄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anda_Islands

[7] NBC News, "Why the Banda Islands Were Once More Valuable Than Manhattan" (2017). 너트멕이 무게로 따져 금보다 값졌고, 반다 제도의 런 섬을 둘러싸고 영국과 네덜란드가 다퉜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nbcnews.com/news/world/why-banda-islands-were-once-more-valuable-manhattan-n787006

[8] "Treaty of Breda (1667)," Wikipedia. 1667년 브레다 조약에서 네덜란드가 뉴암스테르담(맨해튼)을 영국에 넘기는 대신 너트멕이 나는 런 섬을 지켜 너트멕·메이스 무역을 독점하게 된 과정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Treaty_of_Breda_(1667)

[9] Neatorama, "The Nutmeg Wars." 너트멕이 금보다 값진 향신료였던 시절, 런 섬과 맨해튼을 맞바꾼 거래가 당시로서는 합리적 선택이었음을 전합니다. https://www.neatorama.com/2012/08/06/The-Nutmeg-Wars/

[10] Encyclopaedia Britannica, "Pierre Poivre." 프랑스인 피에르 푸아브르가 1770년 무렵 너트멕 묘목을 몰래 빼내 모리셔스에 옮겨 심어 네덜란드의 향신료 독점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Pierre-Poivre

[11] Forbes, "Nutmeg: Grenada's 'Black Gold' Is On The Cusp Of Resurgence" (2020). 1843년 그레나다에 너트멕이 들어온 뒤 이 섬이 세계 너트멕의 약 20%를 생산하는 "향신료 섬"이 됐고, 세계 생산의 약 75%는 인도네시아가 차지한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forbes.com/sites/daphneewingchow/2020/02/23/nutmeg-grenadas-black-gold-is-on-the-cusp-of-resurgence/

[12] Mandy Aftel, Essence & Alchemy(향 노트 분류 단원). 너트멕이 흑후추·생강·정향 등과 함께 '스파이시 노트'로 분류되며 오리엔탈 계열 향에 자주 쓰인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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