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악우드의 역사는 이름을 둘러싼 혼동에서 시작합니다. "과이악"이라는 이름에는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매독의 치료제로 이름을 떨친 약재의 이야기와, 그 이름을 물려받은 남미 향나무의 이야기가 겹쳐 있습니다. 이 페이지는 가이악우드가 지나온 길을 따라갑니다. 가이악우드가 향료가 되는 과정은 원료 페이지에서, 가이악우드에 얽힌 문화는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신대륙에서 온 "성스러운 나무"
"과이악(Guaiacum)"이라는 이름은 본래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에 자라는 나무를 가리켰습니다. 원주민 타이노족이 약으로 쓰던 이 나무는 1508년 무렵 유럽으로 들여와, 당시 유럽에 번지던 매독의 첫 치료제로 소개되었습니다.1 스페인 사람들이 이를 "기적의 치료제"로 알리면서, 유럽에서는 나무에 "성스러운 나무(lignum sanctum)", "생명의 나무(lignum vitae)"라는 이름을 붙여 귀하게 거래했습니다.1
매독의 치료제가 되다
과이악의 명성을 널리 퍼뜨린 인물은 독일의 학자 울리히 폰 후텐이었습니다. 매독을 앓던 그는 1519년 《De Morbo Gallico》에서, 9년간 수은으로 치료받은 끝에 이 "성스러운 나무"로 완전히 나았다고 주장했습니다.2 (실제로는 몇 년 뒤 매독 후기 증상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를 달인 물을 마시는 이 치료법은 고통스러운 수은 요법의 대안으로 큰 기대를 모았고, 과이악은 순식간에 유럽에서 가장 이야기되는 약재가 되었습니다.
부자의 약, 가난한 자의 수은 — 푸거의 독점
과이악은 값비싼 약이었습니다. 서인도제도에서 실어 와야 했기에 값이 높았고,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은행 가문이던 푸거(Fugger) 가가 그 유통을 크게 독점했습니다.3 푸거 가는 의사들에게 대가를 주어 이 새로운 만병통치약을 홍보하게 했고, 처음에는 과이악에 회의적이던 의사들도 보상을 받은 뒤 태도를 바꾸곤 했습니다.3 그 결과 값비싼 과이악은 부유한 환자의 약이 되고, 위험하지만 값싼 수은은 가난한 이들의 몫이 되는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수은에 밀려나다
과이악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달여 마시는 요법이 실제로 매독을 낫게 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이악 무역에 얽힌 이들이 수은을 깎아내리려 애썼지만, 결국 17세기에는 위험하되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 수은이 다시 매독 치료의 주된 방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4 "성스러운 나무"는 이렇게 치료제의 자리에서 밀려났습니다.
약에서 기침약으로 — 과이악의 후예
과이악이 의학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과이악 수지에서 얻는 성분(구아이아콜)은 훗날 거담제 구아이페네신(guaifenesin)의 뿌리가 되어, 오늘날에도 기침·가래약의 성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5 한때 매독의 치료제로 이름을 떨친 나무가, 이름과 성분을 바꿔 현대의 약장 속에 조용히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름을 물려받은 남미의 나무
그런데 오늘날 향수에서 쓰는 가이악우드는 이 "진짜 과이악"이 아닙니다. 향료의 가이악우드 정유는 남미 그란차코에 자라는 다른 나무, 불네시아 사르미엔토이(팔로산토)에서 옵니다.6 향과 성질이 비슷하고 가까운 친척이다 보니 남미의 이 나무도 "과이악"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게 된 것입니다(자세한 구분은 원료 페이지 참고). 하나의 이름이 대서양을 사이에 둔 서로 다른 두 나무에 걸쳐 있는 셈입니다.
비누와 향수의 재료로
남미의 가이악우드 정유가 향의 세계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그 독특한 향 덕분이었습니다. 옛 향료 교본에도 과이악 우드를 몰약·백단·계피·장미와 함께 배합한 처방이 남아 있을 만큼, 이 나무는 일찍부터 향을 짓는 재료로 쓰였습니다.7 은은한 스모키함과 장미 같은 우디-로지한 향, 그리고 다른 향을 오래 붙잡아 주는 뛰어난 고정제(fixative) 성질 덕분에, 가이악우드는 비누와 향수의 재료로 두루 사랑받았습니다.8
파라과이의 향료
오늘날 가이악우드 정유는 대부분 파라과이에서 만들어집니다. 목재를 켜고 남은 톱밥과 나무 조각을 수증기로 증류해 얻는데, 사실상 임업 부산물에서 향료를 뽑아내는 셈입니다.9 이렇게 얻은 정유는 상온에서 굳는 반고체로, 결정성 세스퀴테르펜 알코올인 구아이올(guaiol)과 불네솔(bulnesol)이 전체의 60~85%를 차지해 특유의 향과 고정력을 냅니다.9
니치 향수 속으로
가이악우드는 현대에 들어 니치 향수의 세련된 우디 재료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향 평론가들은 가이악우드를 전면에 내세운 향수(예: 보포트의 Lignum Vitae)를 호평하기도 했는데,10 스모키하면서 장미 같은 이 나무의 향이 개성 있는 우디를 원하는 향수에 잘 맞기 때문입니다.11 약재로 시작한 "성스러운 나무"의 이름이, 이제는 향의 세계에서 새 생명을 얻은 셈입니다.
오늘날 — 보전이라는 과제
가이악우드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원산지인 그란차코 숲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면서도 개발과 벌채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네시아 사르미엔토이는 목재·추출물·정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2010년부터 CITES 부속서 II로 국제 거래가 관리되고, 2018년에는 IUCN 적색목록에서 위기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12 그래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향료를 얻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자세한 이야기는 문화 페이지 참고). 향수에서 가이악우드가 어떤 향으로 쓰이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주
[1] "Guaiacum," Wikipedia. Guaiacum officinale이 원주민 타이노족의 약재였고 1508년 무렵 유럽으로 들어와 매독의 첫 치료제로 쓰이며 "성스러운 나무(lignum sanctum)"·"생명의 나무(lignum vitae)"로 불렸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uaiacum
[2] Atlas Obscura, "A 1500s 'Miracle Cure' Made From Trees Probably Didn't Cure Syphilis." 울리히 폰 후텐이 1519년 《De Morbo Gallico》에서 9년간의 수은 치료 끝에 과이악으로 나았다고 주장했으나 몇 년 뒤 사망했다는 점을 전합니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medical-history-guaiacum-syphilis
[3] Mètode, "The strange case of guaiacwood." 서인도제도에서 들여온 값비싼 과이악의 유통을 16세기 푸거 은행 가문이 독점했고, 의사들에게 대가를 주어 홍보하게 했으며, 과이악은 부유층의 약, 수은은 가난한 이들의 약이 됐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metode.org/issues/article-revistes/the-strange-case-of-guaiacwood.html
[4] "Syphilis — Its early history and Treatment until Penicillin," Journal of Military and Veterans' Health. 나무를 달여 마시는 과이악 요법이 실제로는 매독을 낫게 하지 못했고, 17세기에 수은이 다시 주된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jmvh.org/article/syphilis-its-early-history-and-treatment-until-penicillin-and-the-debate-on-its-origins/
[5] LGC Standards, "Pharmaceutical Roots: Guaifenesin." 과이악 수지에서 얻는 성분(구아이아콜)이 거담제 구아이페네신의 뿌리가 되어 오늘날 기침·가래약에 이어진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lgcstandards.com/DE/en/Resources/Articles/Pharma-roots-Guaifenesin
[6] "Oil of guaiac," Wikipedia. 향료의 가이악우드 정유가 Guaiacum이 아니라 그란차코의 불네시아 사르미엔토이(팔로산토)에서 나온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Oil_of_guaiac
[7] George W. Askinson, Perfumes and Their Preparation(향료 배합 단원). 과이악 우드(Guaiac wood)를 몰약·정향·백단·계피·장미와 함께 배합해 향을 짓는 고전 향료 처방을 전합니다.
[8] Robertet, "Guaiacwood (Paraguay) Essential Oils." 가이악우드 정유가 우디-로지한 향과 뛰어난 고정제 성질로 화장품·향수 업계에서 귀하게 쓰인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e-robertet.com/us/guaiacwood-paraguay-essential-oils-00020730-us.html
[9] "Oil of guaiac," Wikipedia. 가이악우드 정유가 파라과이에서 톱밥·나무 조각을 수증기 증류한 임업 부산물로 얻어지며, 구아이올·불네솔이 전체의 60~85%를 차지하는 반고체라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Oil_of_guaiac
[10]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가이악우드를 전면에 내세운 향수(보포트의 Lignum Vitae 등)를 호평하며, 이 재료가 니치 향수에서 개성 있는 우디로 쓰인다는 점을 전합니다.
[11] Wikipedia, "Bulnesia sarmientoi". 가이악우드가 스모키하면서 장미 같은 향을 지녀 개성 있는 우디를 원하는 향수에 쓰인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ulnesia_sarmientoi
[12] "Bulnesia sarmientoi," Wikipedia. 그란차코 벌채와 목재·추출물·정유 수요 증가로 불네시아 사르미엔토이가 2010년 CITES 부속서 II에 등재되고 2018년 IUCN 적색목록 위기종으로 분류된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ulnesia_sarmient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