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럼은 페어와 마찬가지로 실제 열매가 아니라 합성 화학이 만들어 낸 어코드입니다. 향수 안의 그 진하고 잼처럼 익은 단맛은 자두 과수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조향사의 팔레트에 놓인 여러 합성 에스터와 락톤에서 옵니다. 다만 페어가 하나의 분자에 뿌리를 둔다면 플럼은 여러 재료가 함께 만들어 내는 "베이스"의 성격이 강해서, 향수업은 이 어코드를 흔히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라 부릅니다. 이 페이지는 그 어코드의 세계를 따라갑니다. 플럼이 향수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1944년 팜므 이래의 역사와 동아시아 매화·매실 문화는 역사 페이지와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자두 열매에서는 향이 오지 않는다
향수업의 플럼도 페어처럼 실제 열매에서 향료가 오지 않습니다. 자두 과일의 향 성분은 지극히 낮은 농도로 존재하고, 즙에서 얻은 향은 향수업이 원하는 "잼처럼 익은 진한 단맛"이 아니라 발효되고 시큼한 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대신 향수업이 오래도록 다듬어 온 것은 여러 합성 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플럼 어코드"입니다.1 오늘 향수 라벨의 "플럼"은 언제나 이 조합을 가리키고, 그 조합의 뿌리에는 20세기 초중반부터 이어져 온 합성 화학의 팔레트가 있습니다.
두 얼굴 — 프룬과 플럼
향수 안의 "플럼"이라는 단어는 사실 두 가지 결을 동시에 담습니다. 하나는 프룬(prune, 익어서 짙게 변한 자두) 의 결로, 잼처럼 진하고 무거운 단맛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선한 플럼(plum) 의 결로, 즙 있고 살짝 새콤한 단맛입니다. 향수업의 어휘는 오랫동안 프룬 쪽에 더 자주 기울어져 왔고, 그것은 1944년 로샤스 팜므가 "익은 자두의 잼 같은 결"을 여성 향수의 심장에 얹은 뒤로 시프르와 오리엔탈 향수의 표준 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조향사가 신선한 자두 쪽으로 결을 밀고 싶으면 시트러스와 그린 노트를 더 얹고, 프룬 쪽으로 밀고 싶으면 오크모스와 바닐라를 더 얹습니다.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 — 조향의 표준 어휘
향수업이 오래도록 이 어코드를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Prunol-like plum base)" 입니다.2 "프루놀"이라는 이름은 20세기 향료업이 시장에 유통한 특정 합성 어코드의 상품명에서 왔고, 이 이름이 그대로 조향의 어휘로 굳어졌습니다. 오늘의 향수 평론가들도 어떤 향수의 플럼 결을 두고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가 지나치다"거나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를 세련되게 다뤘다"고 평합니다. 이 어휘 자체가 플럼이 하나의 재료가 아니라 여러 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베이스"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핵심 후룻 에스터
플럼 어코드의 팔레트는 크게 후룻 에스터와 락톤 두 가족으로 나뉩니다. 먼저 후룻 에스터 쪽에는 다음 재료들이 있습니다.3
- 하이드라트로필 알코올 부틸레이트(hydratropyl alcohol butyrate) — 한 향료 화학 사전이 "과일잼의 매우 달콤하고 다소 무거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즐거운, 프룬과 플럼 보존품(preserve)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라 정확히 묘사한 분자. 플럼 어코드의 중심 재료 중 하나입니다.
- D.M.B.C. 부틸레이트(dimethyl benzyl carbinyl butyrate) — 부드러운 허브-후룻 톤의 플럼/프룬 결을 지녀, 오리엔탈 로즈·시프르·피오니 어코드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 이소아밀 벤조에이트(iso-amyl benzoate) — 사과·비터 아몬드·체리·코코아·헤이즐넛·복숭아·플럼·프룬 등 여러 후룻·구르망 어코드의 보조 분자.
- 이소프로필 옥토에이트(iso-propyl octoate) — 블랙베리·플럼·코냑·와인 결의 에스터.
이 여러 분자의 미묘한 비율이 조향사가 "플럼"이라는 하나의 결을 그리는 팔레트입니다.
락톤 — 익은 과일의 깊은 단맛
같은 팔레트의 다른 절반에 락톤들이 자리합니다. 락톤은 과일의 깊은 익은 단맛을 만드는 결정적 분자들입니다.4
- γ-운데카락톤(γ-undecalactone) — 흔히 "피치 락톤" 또는 잘못된 이름 "알데하이드 C-14"로 불리는 분자. 1944년 팜므의 심장이 된 재료이며, 플럼 어코드에서도 "익은 자두의 부드러운 결"을 만드는 데 함께 씁니다.
- γ-도데카락톤(γ-dodecanolide) — Prunus persica(복숭아 나무)에서 발견된 락톤으로, 코코넛과 머스키한 결에 후룻 단맛을 잇는 다리.
- δ-데카락톤(δ-decalactone) — 우유·크림 결이 도는 락토닉 톤.
이 락톤들이 앞의 후룻 에스터들과 조합되면, 우리가 아는 그 "프룬의 잼 같은 깊은 단맛"의 결이 완성됩니다. 피치와 플럼이 화학적으로 가까운 이유가 여기 있고, 두 노트가 종종 같은 향수 안에 함께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Prunus 가족의 아몬드 톤
플럼 어코드에는 자주 옆자리 재료로 Prunus 가족 특유의 너티-아몬드 톤이 함께 얹힙니다.5 이것은 화학적 우연이 아닙니다. 자두(P. domestica), 살구(P. armeniaca), 체리(P. avium / P. cerasus), 복숭아(P. persica), 아몬드(P. amygdalus)가 모두 같은 Prunus속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 열매의 씨(핵) 안에는 공통된 아몬드 톤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향수업은 이 결을 살려 비터 아몬드 오일과 체리 핏 오일을 미량 얹어 플럼 어코드에 살짝 견과 같은 결의 입체감을 더합니다. 특히 P. domestica의 씨에서도 소량의 비터 아몬드 오일을 얻을 수 있어, 화학적으로 진짜 자두의 결이 이 옆자리 재료를 통해 얼핏 향수에 스며들기도 합니다.
'벤즈알데하이드'라는 다리 분자
같은 아몬드 톤을 정밀하게 다루는 데 자주 쓰이는 것이 벤즈알데하이드(benzaldehyde) 입니다. 이 분자는 살구 씨와 비터 아몬드에서 나오는 그 특유의 향의 정체이고, 플럼 어코드에서 아주 소량 얹혔을 때 "익은 자두 안에 살짝 아몬드 향이 도는" 결을 만들어 냅니다. 자두 잼을 오래 익혔을 때 나오는 그 미묘한 견과 결의 흔적을, 이 분자 하나가 향수 안에 재현해 냅니다.
산지의 부재 — 산업 화학이 산지다
플럼 어코드가 실제 열매에서 오지 않기 때문에, "플럼 정유의 산지"라는 개념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상 식물의 원산지로 보면 P. domestica는 동유럽·중앙아시아·서아시아, P. salicina는 동아시아, P. mume는 중국·한국·일본이지만, 이 지도는 향료 산업의 산지 지도와 겹치지 않습니다. 향수업의 플럼 어코드의 진짜 "산지"는 20세기 초중반에 자리잡은 유럽과 미국의 합성 화학 산업이고, 오늘 시장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플럼 재료는 스위스·독일·프랑스·미국의 향료 회사들의 실험실에서 나옵니다. 자연의 지도가 아니라 산업의 지도 위에 이 노트가 서 있는 것입니다.
안전성 — 오래 검증된 재료
플럼 어코드에 쓰이는 합성 에스터와 락톤 분자들은 향수 사용 농도에서 안전한 재료로 분류됩니다. 이소아밀 벤조에이트와 락톤 계열은 식품 향료로도 오랫동안 쓰여 온 GRAS 카테고리에 속하고, 국제향료협회(IFRA)의 관리 아래에서 문제없이 사용되어 온 이력이 있습니다. 데일리 향수의 사용 농도에서는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재료입니다.
'익은 과일의 향'을 만드는 방법
플럼 어코드는 향수업의 화학적 상상력이 자연의 인상을 얼마나 세심하게 다시 그릴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자두 잼 한 숟가락을 실제로 향수에 넣을 수는 없지만, 잼을 처음 만드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관찰하고, 그 안의 여러 향분자를 조각조각 다시 조립해 향수 안에서 되살릴 수는 있습니다. 조향사가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를 짜는 일은 결국 이 조립의 정확도와 균형에 관한 일이고, 그 균형이 좋을 때 향수는 우리에게 정말로 "자두 잼 한 숟가락의 따뜻한 단맛"을 데려다 줍니다.
주
[1] Steffen Arctander, Perfume and Flavor Chemicals, 플럼/프룬 톤 합성 에스터 단원 및 Karen Gilbert, Perfume: The Art and Craft of Fragrance. 향수업의 플럼이 실제 자두 열매의 정유가 아니라 여러 합성 에스터와 락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어코드이며, 열매의 즙에서 얻은 향은 향수업이 원하는 "잼처럼 익은 진한 단맛"과 다른 결이라는 산업 실무의 정리입니다.
[2]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다양한 향수 평. 향수업이 오래도록 이 어코드를 "프루놀풍 플럼 베이스(Prunol-like plum base)"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20세기 향료 회사가 시장에 유통한 특정 합성 어코드의 상품명이 조향의 표준 어휘로 자리잡아 오늘의 향수 평론에서도 이 표현이 그대로 사용된다는 실무의 정리입니다.
[3] Steffen Arctander, Perfume and Flavor Chemicals, "Hydratropyl alcohol butyrate"·"D.M.B.C. butyrate"·"iso-Amyl benzoate"·"iso-Propyl octoate" 단원. 하이드라트로필 알코올 부틸레이트가 "과일잼의 매우 달콤하고 다소 무거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즐거운, 프룬과 플럼 보존품을 떠올리게 하는 향"으로 묘사되며, D.M.B.C. 부틸레이트가 부드러운 허브-후룻 톤의 플럼/프룬 결로 오리엔탈 로즈·시프르·피오니 어코드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실무의 정리입니다.
[4] Günther Ohloff, Wilhelm Pickenhagen, Philip Kraft, Scent and Chemistry: The Molecular World of Odors, 락톤 분자 단원. γ-운데카락톤·γ-도데카락톤·δ-데카락톤 같은 락톤 분자들이 과일의 깊은 익은 단맛을 만드는 결정적 재료이며, 이들이 앞의 후룻 에스터들과 조합될 때 프룬의 잼 같은 깊은 단맛의 결이 완성된다는 화학적 정리입니다.
[5] Steffen Arctander, Perfume and Materials of Natural Origin, "Bitter Almond Oil" 단원; W. A. Poucher & A. J. Jouhar, Poucher's Perfumes, Cosmetics and Soaps, Vol. 1, "Cherry pit oil" 단원. Prunus 가족의 여러 열매 씨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아몬드 톤 성분이 플럼 어코드의 옆자리 재료로 함께 얹혀 살짝 견과 같은 결의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는 실무의 정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