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랄린의 향수사는 다른 어떤 노트와도 다른 궤적을 그립니다. 이 이름은 원래 향수의 단어가 아니라 17세기 프랑스 궁정 요리사의 부엌에서 태어난 디저트의 이름이었고, 향수의 어휘로 정착하기까지 300년이 걸렸습니다. 요리와 화학, 그리고 향수가 시대를 거쳐 만나 결국 하나의 어코드를 이룬 이 흥미로운 여정을 이 페이지는 따라갑니다. 프랄린이 어떻게 향료가 되는지는 원료 페이지에서, 벨기에 초콜릿과 구르망 문화의 자리는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17세기 프랑스 — 프라슬랭 백작 요리사의 디저트
프랄린이라는 이름의 뿌리는 17세기 프랑스 궁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루이 13세와 루이 14세의 시대를 함께한 프랑스 귀족 세자르 슈아쇨 뒤 플레시-프라슬랭(César, duc de Choiseul, comte du Plessis-Praslin, 1598~1675) 의 요리사 클레망 잘루조(Clément Jaluzot)가 캐러멜화된 설탕에 아몬드를 결합한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1 이 디저트가 백작의 이름을 따 "프랄린(praline)" 이라 불리게 된 것이 이 단어의 첫 자리였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 궁정의 사치스러운 간식이었던 이 캐러멜 아몬드가 이후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고, 프랑스 남서부 몽타르지(Montargis)의 상점 "메종 마자 티에리(Maison Mazet Thierry)"가 오늘까지도 원조 프랄린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18~19세기 — 프랑스와 벨기에의 디저트 문화
18~19세기에 걸쳐 프랄린은 프랑스·벨기에·스위스의 디저트 문화 안에 깊이 자리잡습니다. 각 지역이 자기 방식의 프랄린을 발전시켰습니다. 프랑스 남부는 캐러멜화된 아몬드 자체를 프랄린이라 부르고, 스위스는 헤이즐넛과 초콜릿을 결합한 프랄린을 만들었으며, 이탈리아 북부는 밀라노와 토리노의 카페 문화 안에서 잔두야(gianduia) 같은 헤이즐넛 초콜릿을 발전시켰습니다. "프랄린"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여러 지역의 서로 다른 캐러멜-견과 디저트가 함께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의 프랄린은 순수한 요리의 영역에 있었고, 향수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1868년 — 퍼킨과 쿠마린의 합성
향수업이 프랄린 어휘의 화학적 토양을 얻은 결정적 순간은 뜻밖에도 요리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왔습니다. 1868년 영국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William Henry Perkin)이 쿠마린(coumarin)을 최초로 합성한 순간입니다.2 이 사건은 향료 화학사에서 "향료 화학의 공식 생일"로 여겨집니다. 쿠마린은 새로 벤 건초와 통카 빈에서 자연 발생하는 분자로, 이전에는 오직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퍼킨의 합성 이후 향수업은 이 분자를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새 자유가 이후 100년 넘게 향수의 팔레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쿠마린이 프랄린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뒤에서 다시 볼 것입니다.
1882년 — 푸제르 로얄과 쿠마린의 첫 향수
퍼킨의 쿠마린 합성 이후 14년 만에, 그 분자가 향수의 심장에 얹힌 첫 작품이 등장합니다. 1882년 프랑스 향수 하우스 우비강(Houbigant)의 푸제르 로얄(Fougère Royale, 조향 폴 파르케) 입니다.3 이 향수는 라벤더와 오크모스, 그리고 쿠마린이 결합한 새로운 어코드를 만들어 냈고, 이후 이 어코드는 향수의 새 카테고리 — "푸제르(fougère, 고사리)" — 를 여는 원형이 되었습니다. 이 향수의 심장에 있던 쿠마린은 새로 벤 건초와 담배, 그리고 살짝 캐러멜 도는 결을 함께 지녔고, 이 결이 결국 100년 뒤 프랄린 어코드의 뿌리 중 하나가 됩니다.
1912년 — 벨기에 노이하우스의 초콜릿 프랄린
같은 시기 디저트의 세계에서는 또 다른 결정적 순간이 있었습니다. 1912년 벨기에 브뤼셀의 초콜릿 상인 장 노이하우스 2세(Jean Neuhaus II) 가 처음으로 "초콜릿 셸 안에 프랄린 페이스트를 채운 형태"를 발명했습니다.4 아버지 세대가 만들던 약국의 초콜릿 사탕에서 시작해 그가 발전시킨 이 새로운 디저트가 오늘 우리가 아는 "벨기에 프랄린 초콜릿"의 원형이 되었고, 이후 벨기에가 세계 프랄린 디저트의 대명사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노이하우스 사가 지금도 브뤼셀 갈레리 로얄의 원래 자리에서 프랄린을 만들어 팔고, 벨기에는 오늘도 인구당 초콜릿 소비 세계 최상위국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 향수업의 조용한 조연
20세기 초·중반의 향수업에서 프랄린은 여전히 조용한 조연이었습니다. 겔랑의 미츠코(1919), 로샤스의 팜므(1944) 같은 걸작들이 γ-운데카락톤(피치 락톤)을 심장으로 삼고 프룬 어코드를 얹었지만, 그 아래에 살짝 도는 "달콤한 발삼의 결"에 통카 빈과 벤조인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향수업은 아직 "프랄린"이라는 어휘를 명시적으로 쓰지 않았고, 그 결은 오리엔탈 향수의 "달콤한 베이스" 정도로 통칭됐습니다.
1970~80년대 — 오리엔탈의 시대와 캐러멜의 예감
1970~80년대 향수 시장을 주도한 카테고리 중 하나가 오리엔탈(oriental) 향수였습니다. 오스카 드 라 렌타(1977), 오피움(YSL, 1977), 시나바(에스티 로더, 1978) 같은 향수들이 바닐라·앰버·통카·벤조인·스파이스를 진하게 얹은 어코드로 시장을 이끌었고, 이 안에서 캐러멜의 결이 조금씩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프랄린"이라는 이름이 라벨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었고, 결은 여전히 "따뜻한 오리엔탈 베이스"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있었습니다.
1992년 — 앤젤과 구르망의 탄생
프랄린이 향수의 어휘로 폭발적으로 자리잡은 결정적 순간이 왔습니다. 1992년 티에리 뮈글러의 앤젤(Angel, 조향 올리비에 크레습·이브 드 시레스니) 입니다.5 이 향수는 그 시대 향수업의 관행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향수의 심장에 초콜릿, 캐러멜, 바닐라, 파출리, 라즈베리, 벌꿀이 진하게 결합된 이 어코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향"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시장에 처음 들여왔고, 그 감각을 부를 새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프랑스 평론가들이 만든 이름이 바로 "구르망(gourmand)" 입니다. 이 카테고리 안에서 프랄린 어휘가 처음 향수의 심장에 명시적으로 얹혀 시장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앤젤의 심장에 있던 에틸 말톨의 캐러멜 폭발이 이후 30년 넘게 구르망 향수의 지문이 되었습니다.
1990~2000년대 — 구르망의 확산과 프랄린 어휘
앤젤의 성공 이후 향수 시장의 상당 부분이 구르망 카테고리로 이동했습니다. 롤리타 렘피카(1997), 아쿠아 디 파르마 오리지널(1998), 티에리 뮈글러의 에일리언(2005) 같은 향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캐러멜과 바닐라, 견과 노트를 결합했고, 그 사이 "프랄린"이라는 단어가 향수 라벨의 표준 어휘가 됐습니다.6 1997년 프랑스 니치 브랜드에서 안니크 메나르도(Firmenich)가 조향한 작품이 베이스에 명시적으로 "바닐라·프랄린·베티버·통카·머스크"를 배치한 것이 이 시기의 대표적 사례이고, 이후 파코 라반 블랙 XS(2005), 몽블랑 레전드(2011) 같은 남성 향수까지 프랄린 어휘가 확산됐습니다.
2015년 — 페브 델리시외즈와 니치의 재해석
21세기 니치 향수 흐름 안에서 프랄린은 새로운 재해석의 대상이 됐습니다. 2015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페브 델리시외즈(Fève Délicieuse, 조향 프랑수아 드마시) 는 통카 빈을 중심에 두고 프랄린 어코드를 더 절제되고 어른스러운 방향으로 다시 짰습니다.7 "페브 델리시외즈"는 프랑스어로 "맛있는 콩(즉 통카 빈)"이라는 뜻이고, 이 이름 자체가 이 향수의 야심을 잘 보여 줍니다. 이후 세르주 루탕, 바이레도, 프레데릭 말, MFK(Maison Francis Kurkdjian) 같은 니치 브랜드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프랄린 어코드를 재해석해 왔고, 이 흐름 안에서 프랄린은 앤젤 시대의 폭발적 단맛에서 벗어나 좀 더 정제되고 세련된 방향으로 넓혀지고 있습니다.
오늘 — 30년 넘은 구르망의 지속
앤젤이 세운 구르망 카테고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향수 시장의 큰 축입니다. 몽블랑, 라 비 에 벨(랑콤), 굿 걸(캐롤리나 헤레라), 굳나잇 문(퍼퓸 드 니콜라이) 같은 여러 브랜드의 대표작이 여전히 프랄린 어코드의 뿌리 위에 있고, 아시아 시장에서도 구르망 프랄린 향수의 인기는 매년 상승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30년 넘은 카테고리가 여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 준다는 사실은, 프랄린이라는 어휘가 지닌 문화적·감각적 깊이를 잘 보여 줍니다.
400년의 여정, 요리와 화학이 만난 자리
프랄린의 향수사는 400년의 이상한 여정입니다. 17세기 프랑스 궁정 요리사의 부엌에서 태어난 디저트의 이름이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식문화가 되었고, 1868년 실험실에서 태어난 하나의 분자가 향수 화학의 문을 열었으며, 1912년 벨기에의 초콜릿 상인이 프랄린 디저트의 형태를 완성했고, 1992년 파리의 한 향수가 이 모든 것을 향수의 언어로 재조합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향수병을 열 때 만나는 그 캐러멜과 볶은 견과의 따뜻한 결 뒤에는, 요리와 화학과 향수가 400년에 걸쳐 만나 온 이 조용하고 놀라운 여정이 함께 있습니다.
주
[1] "Praline," Wikipedia. 프랄린이라는 이름의 뿌리가 17세기 프랑스 궁정으로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 귀족 세자르 슈아쇨 뒤 플레시-프라슬랭(1598~1675)의 요리사 클레망 잘루조가 캐러멜화된 설탕에 아몬드를 결합한 새로운 디저트를 만든 뒤 백작의 이름을 따 "프랄린"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프랑스 남서부 몽타르지의 상점 메종 마자 티에리가 오늘까지도 원조 프랄린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프랄린 어원의 역사를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raline
[2]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A-Z Guide, "A Brief History of Perfume" 단원. 1868년 영국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이 쿠마린을 최초로 합성한 순간이 향료 화학사의 "공식 생일"로 여겨지며, 이전에는 새로 벤 건초와 통카 빈에서 자연 발생하는 쿠마린을 오직 자연에서만 얻을 수 있었으나 퍼킨의 합성 이후 향수업이 이 분자를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새 자유가 이후 100년 넘게 향수의 팔레트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향료 화학사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정리입니다.
[3]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fougère" glossary 단원 및 "Fougère Royale (Houbigant)" 단원. 1882년 프랑스 향수 하우스 우비강의 폴 파르케가 조향한 푸제르 로얄이 라벤더·오크모스·쿠마린의 새로운 어코드로 "푸제르(fougère, 고사리)"라는 향수 카테고리를 여는 원형이 되었고, 이 향수의 심장에 있던 쿠마린이 새로 벤 건초와 담배·살짝 캐러멜 도는 결을 함께 지녀 결국 100년 뒤 프랄린 어코드의 뿌리 중 하나가 되었다는 향수사의 정리입니다.
[4] "Neuhaus (chocolatier)," Wikipedia. 1912년 벨기에 브뤼셀의 초콜릿 상인 장 노이하우스 2세가 아버지 세대가 만들던 약국의 초콜릿 사탕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초콜릿 셸 안에 프랄린 페이스트를 채운 형태"를 발명했으며 이것이 오늘 우리가 아는 "벨기에 프랄린 초콜릿"의 원형이 되어 이후 벨기에가 세계 프랄린 디저트의 대명사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노이하우스 사가 지금도 브뤼셀 갈레리 로얄의 원래 자리에서 프랄린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벨기에 초콜릿 산업사의 정리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euhaus_(chocolatier)
[5]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A-Z Guide, "Angel (Mugler)" 단원 및 "fruitchouli" glossary. 1992년 티에리 뮈글러의 앤젤(조향 올리비에 크레습·이브 드 시레스니)이 초콜릿·캐러멜·바닐라·파출리·라즈베리·벌꿀이 진하게 결합된 어코드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향"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시장에 처음 들여왔고, 프랑스 평론가들이 이 새 카테고리를 부를 이름으로 "구르망(gourmand)"을 만들었으며 이 카테고리 안에서 프랄린 어휘가 처음 향수의 심장에 명시적으로 얹혀 시장의 주역이 되었고 앤젤의 심장에 있던 에틸 말톨의 캐러멜 폭발이 이후 30년 넘게 구르망 향수의 지문이 되었다는 향수사의 결정적 순간을 정리합니다.
[6] Nigel Groom, Perfume. 1990~2000년대 구르망 향수 시장의 확산 안에서 롤리타 렘피카(1997)·에일리언(2005) 같은 여성 향수와 파코 라반 블랙 XS(2005)·몽블랑 레전드(2011) 같은 남성 향수까지 프랄린 어휘가 향수 라벨의 표준 어휘가 되었고, 1997년 프랑스 니치 브랜드에서 안니크 메나르도(Firmenich)가 조향한 작품이 베이스에 명시적으로 "바닐라·프랄린·베티버·통카·머스크"를 배치한 것이 이 시기의 대표적 사례라는 노트 구조의 정리입니다.
[7]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Fève Délicieuse (Dior)" 단원. 2015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페브 델리시외즈(조향 프랑수아 드마시)가 통카 빈을 중심에 두고 프랄린 어코드를 더 절제되고 어른스러운 방향으로 다시 짰으며 "페브 델리시외즈"라는 이름 자체가 프랑스어로 "맛있는 콩(즉 통카 빈)"이라는 뜻으로 이 향수의 야심을 잘 보여 주고, 이후 세르주 루탕·바이레도·프레데릭 말·MFK 같은 니치 브랜드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프랄린 어코드를 재해석해 앤젤 시대의 폭발적 단맛에서 벗어나 좀 더 정제되고 세련된 방향으로 넓혀지고 있다는 21세기 니치 재해석의 정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