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마트에서 쉽게 사는 향신료지만, 계피는 수천 년 동안 은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계피의 원산지를 감추려는 전설과, 그 무역을 손에 넣으려는 나라들의 다툼이 계피의 역사를 채웁니다. 이 페이지는 시나몬이 지나온 길을 따라갑니다. 시나몬이 향료가 되는 과정은 원료 페이지에서, 시나몬에 얽힌 문화는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고대 — 신성하고 귀한 향
계피는 가장 오래된 시대부터 없어서는 안 될 향으로 여겨진, 몇 안 되는 향신료 중 하나입니다.1 이집트인들은 계피를 미라를 만드는 데 썼고,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종교 의식에서 계피를 향불에 태워 향기로운 연기를 냈으며, 계피를 사치의 상징이자 격식 있는 선물로 삼았습니다.2 성경에도 계피가 등장하는데,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로 내 침상에 향을 뿌렸다"(잠언 7장 17절)는 구절처럼, 계피는 몰약·오드와 어우러진 관능적이고 신성한 향으로 3000여 년 전부터 쓰였습니다.3 계피는 이렇게 향과 신성함, 사치를 상징하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은보다 귀했던 값
계피의 값어치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계피 350그램이 은 5킬로그램이 넘는 값에 맞먹는다고 적었습니다.4 이렇게 값진 물건이었기에, 계피의 원산지와 무역로를 둘러싼 경쟁도 그만큼 치열했습니다. 계피는 요리뿐 아니라 향의 세계에서도 귀하게 쓰이며, 오래도록 향신료 무역의 중심에 있었습니다.1
헤로도토스가 전한 계피 새의 전설
계피가 어디서 오는지는 오래도록 신비에 싸여 있었습니다. 고대의 아랍 상인들은 계피의 진짜 산지를 감추기 위해 기이한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거대한 새들이 계피로 아라비아의 절벽에 둥지를 짓는데, 사람들이 큰 고깃덩이를 놓아 두면 새가 이를 물어 둥지로 나르다가 둥지가 무너져 계피를 얻는다고 전했습니다.5 이 "계피 새(cinnamologus)" 전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리니우스를 거쳐 중세의 동물지(비스티어리)에까지 되풀이되었습니다.6 계피의 값을 높이고 경쟁자가 원산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상술이었던 셈입니다. 계피의 진짜 고향이 스리랑카라는 사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유럽에 알려졌습니다.
진짜 계피와 카시아, 그 값의 차이
계피에도 등급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 향신료 전문가 W. M. 깁스는 저서 《Spices and How to Know Them》(1909)에서, 진짜 실론 계피가 한 파운드에 100달러에 이른 반면 식료품점에서 파는 흔한 중국 카시아는 파운드당 6~7센트에 불과했다고 적었습니다.7 실론 계피(Cinnamomum verum)는 얇은 껍질이 여러 겹으로 말린 섬세한 "진짜 계피"이고, 중국 남부의 카시아(Cinnamomum cassia)는 더 두껍고 값싼 대체재였습니다.8 이 큰 값 차이가 실론 계피를 둘러싼 다툼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실론을 둘러싼 세 제국
로마 이후 계피 무역은 여러 손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아랍 상인들이 육로로 실어 왔고, 이후 베네치아 상인들이 유럽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교역로를 흔들자 유럽은 새 뱃길을 찾아 나섰고, 1505년 포르투갈 함대가 실론(오늘날 스리랑카)에 닿아 콜롬보에 요새를 세우고 계피 무역을 장악했습니다.9 포르투갈은 실론에 요새를 세우고 100년 가까이 독점을 이어 갔지만, 뒤이어 네덜란드 상인들이 내륙의 칸디 왕국과 조약을 맺고 20년 만에 포르투갈을 몰아내며 1658년 계피 무역을 손에 넣었습니다.10 이후 1796년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실론을 빼앗아, 계피의 원산지는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 세 제국의 손을 차례로 거쳤습니다.9
잔혹한 독점
네덜란드는 계피의 값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한 통제를 폈습니다. 실론에서 계피 재배를 엄격히 제한했고, 허락 없이 계피나무를 베는 사람은 손목을 자르고, 계피 씨앗을 섬 밖으로 빼내거나 몰래 사고파는 이는 사형에 처했습니다.11 이 통제가 지나치게 성공해 계피가 넘쳐 값이 떨어지자, 네덜란드는 실론과 암스테르담에서 남는 계피를 불태워 버렸는데, 구운 계피 냄새가 며칠 동안 도시를 뒤덮었다고 전해집니다.11 향긋한 향신료 하나를 둘러싸고 이토록 치열하고 잔혹한 다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계피가 그만큼 값진 물건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재배가 널리 퍼지고 무역이 자유로워지면서, 계피는 차츰 누구나 살 수 있는 향신료가 되었습니다. 영국은 1833년 계피 무역을 민간에 개방했고, 이후 재배가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12 오늘날 실론 계피는 여전히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특산품이고, 값싼 카시아 계피는 세계 곳곳에서 대량으로 생산됩니다. 한때 은보다 귀하던 껍질이 이제 일상의 향이 된 것은, 그 자체로 계피 무역의 역사가 남긴 결과입니다. 향수에서 시나몬이 어떤 향으로 쓰이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주
[1] Mandy Aftel, Fragrant(계피 단원). 계피가 가장 오래된 시대부터 없어서는 안 될 향으로 여겨진 몇 안 되는 향신료의 하나로, 향신료 무역의 중심에 오래 있었다는 점을 전합니다.
[2] Red Ape Cinnamon, "A Deep Dive into Cinnamon's Symbolism in Different Cultures." 고대 이집트가 계피를 미라 방부에 썼고, 그리스·로마가 계피를 사치의 상징이자 격식 있는 선물로 삼았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redapecinnamon.com/a-deep-dive-into-cinnamons-symbolism-in-different-cultures/
[3]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스리랑카·향신료 단원). 계피가 몰약·오드(고대의 '알로에')와 어우러진 관능적 향으로 3000여 년 전부터 쓰였으며, 성경 잠언 7장 17절의 "몰약과 알로에와 계피로 향을 뿌린 침상"이 그 예임을 전합니다.
[4] Spice by Alibaba, "Cinnamon History: Origins, Trade Routes & Cultural Impact." 플리니우스가 계피 350그램을 은 5킬로그램이 넘는 값으로 기록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spice.alibaba.com/spice-basics/history-of-cinnamon
[5] Mandy Aftel, Fragrant(계피 원산지 전설 단원). 헤로도토스와 여러 동물지에 등장하는 계피 새(cinnamologus)가 계피로 둥지를 짓는다는 전설과, 페랄두스(1190~1271년경)의 기록을 인용해 전합니다.
[6] "Cinnamon bird," Wikipedia. 헤로도토스가 《역사》에서 계피 새를 아라비아에 두었고, 아랍 상인들이 고깃덩이로 새를 꾀어 둥지에서 계피를 얻었다는 전설이 아리스토텔레스·플리니우스와 중세 동물지로 이어졌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innamon_bird
[7] Mandy Aftel, Fragrant(계피 등급 단원). W. M. 깁스의 《Spices and How to Know Them》(1909)을 인용해, 진짜 실론 계피가 파운드당 100달러에 이른 반면 흔한 중국 카시아는 파운드당 6~7센트에 불과했다는 점을 전합니다.
[8] Healthline, "Ceylon vs. Cassia — Not All Cinnamon Is Created Equal." 실론 계피(Cinnamomum verum)와 중국 카시아(Cinnamomum cassia)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https://www.healthline.com/nutrition/ceylon-vs-cassia-cinnamon
[9] Ceylon History Stories, "The Golden Bark: How Cinnamon Drew Three Empires to Ceylon's Shores." 1505년 포르투갈 함대가 실론에 닿아 콜롬보에 요새를 세웠고, 이후 네덜란드(1658)와 영국(1796)이 차례로 계피 무역을 차지한 세 제국의 다툼을 정리합니다. https://ceylonhistory.com/en/stories/cinnamon-trade/
[10] Mandy Aftel, Fragrant(실론 무역 단원). 포르투갈이 16세기 초 실론에 요새를 세우고 100년 가까이 독점한 뒤, 네덜란드가 내륙 칸디 왕국과 조약을 맺고 20년 만에 포르투갈을 몰아낸 과정을 전합니다.
[11] Mandy Aftel, Fragrant(네덜란드의 계피 통제 단원). 네덜란드가 실론의 계피 재배를 제한하며 나무를 벤 이의 손목을 자르고 씨앗 반출·암거래를 사형으로 다스렸으며, 공급 과잉으로 값이 떨어지자 실론과 암스테르담에서 남는 계피를 불태웠다는 기록을 전합니다.
[12] "British Ceylon," Wikipedia. 1796년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실론을 빼앗아 계피 독점을 이어 가다 1833년 무역을 민간에 개방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ritish_Ceyl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