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후추는 어느 식탁에나 놓인 흔한 향신료지만, 역사의 대부분 동안 후추는 금에 견줄 만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후추를 손에 넣으려는 갈망은 제국을 움직이고, 바닷길을 열고, 세계 지도를 바꿔 놓았습니다. 이 페이지는 블랙페퍼가 지나온 길을 따라갑니다. 후추가 향료가 되는 과정은 원료 페이지에서, 후추에 얽힌 문화는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고대 — 그리스에서 로마까지
블랙페퍼는 이미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고대 여러 민족이 이를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1 후추는 금처럼 교환의 수단이자 공물(貢物)로 쓰였는데,1 이는 후추가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재산과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로마 시대에 후추는 사프란·생강과 함께 향신료 무역의 핵심 품목이었고, 초기 로마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강한 향의 향신료에 대한 갈망은 식지 않았습니다.2 후추는 약으로도 오래 쓰여, 이미 고대에 히포크라테스가 후추를 약재로 처방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3
로마의 후추 열병 — 무지리스
로마인들의 후추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기원후 70년 무렵의 항해 안내서 《에리트라해 항해기(Periplus)》는 인도 말라바르 해안의 항구 무지리스(Muziris)에서 로마 동전과 후추를 맞바꾸던 모습을 전합니다.4 무지리스는 아라비아와 그리스(로마-이집트) 상인들의 배로 붐비던 큰 무역항이었고, 후추는 이곳에서 유럽으로 실려 나갔습니다. 오늘날 케랄라의 파타남 유적에서 로마산 암포라와 로마식 인장이 발견되면서, 잃어버렸던 무지리스의 위치가 확인되고 있습니다.4
몬순을 탄 배들
이 무역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계절풍, 곧 몬순이었습니다. 상인들은 7월 무렵 이집트를 떠나면 몬순을 타고 9월에 인도에 닿을 수 있다는 규칙을 알아냈고,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로마가 해마다 120척의 배를 인도로 보냈다고 기록했습니다.5 후추를 실은 배는 400톤이 넘는 대형선이었습니다. 몬순의 리듬을 읽어 낸 덕분에, 배는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인도까지 곧장 가서 후추를 가득 싣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5
플리니우스의 한탄 — 로마의 금 유출
이 화려한 무역에는 그늘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후추를 비롯한 동방의 사치품 때문에 "인도가 매년 로마 제국에서 5천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빨아 간다"고 한탄했습니다.6 정작 후추에는 특별한 영양도, 대단한 효능도 없는데 오직 톡 쏘는 맛 하나 때문에 이토록 비싼 값을 치른다는 것이 그의 불평이었습니다. 후추를 향한 로마의 열병이 제국의 금을 동쪽으로 흘려보낼 만큼 컸음을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원산지 — 인도 말라바르 해안
후추의 고향은 인도 남서부의 말라바르 해안(케랄라)입니다. 이 해안은 스리랑카의 서해안과 함께 향신료 무역이 시작된 두 "향신료 해안"으로 꼽힙니다.7 후추와 계피가 자라던 이 지역에서 향신료는 처음에는 육로로 아라비아의 몰약·유향을 나르는 대상(隊商)과 만났고, 기원후 1세기부터는 계절풍을 이용한 바닷길을 통해 실려 나갔습니다.7
롱페퍼 — 잊힌 라이벌
오늘날 "후추"라 하면 둥근 검은 후추를 떠올리지만, 오랜 세월 유럽에서 더 귀하게 여겨진 것은 길쭉한 **롱페퍼(long pepper, Piper longum)**였습니다. 롱페퍼는 검은 후추보다 먼저 향신료 길을 따라 퍼져 로마인들에게도 알려졌고, 중세를 지나 16세기까지도 인기를 누렸습니다.8 그러나 12세기부터 검은 후추가 경쟁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롱페퍼를 밀어냈고, 신대륙의 매운 고추가 유럽에 퍼지면서 롱페퍼는 유럽의 부엌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8 후추의 역사에는 이렇게 잊힌 라이벌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중세 — 아랍과 베네치아의 손을 거쳐
로마가 저문 뒤에도 후추를 향한 유럽의 갈망은 이어졌습니다. 후추는 아랍 상인들의 육로 무역을 거쳐 알렉산드리아로 들어왔고, 이후 베네치아 상인들이 레반트 교역로를 통해 유럽의 향신료 무역을 사실상 독점했습니다.9 후추는 요리뿐 아니라 향료 산업의 핵심 품목이기도 해서, 900년 무렵 콘스탄티노플의 향료상 운영 규정에도 후추가 취급 품목으로 올라 있었습니다.10 여러 중간 상인의 손을 거치는 동안 후추 값은 계속 치솟았고, 후추는 부유한 이들만 넉넉히 쓸 수 있는 사치품으로 남았습니다. 이 긴 유통 구조 때문에 유럽인들은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후추의 원산지에 직접 닿을 수는 없을까" 하는 열망을 품게 됩니다.
대항해 시대 — 후추가 연 바닷길
15세기 말, 이 열망은 마침내 바다로 향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동서 교역로를 가로막자, 유럽의 상인과 항해가들은 향신료의 원산지에 직접 닿을 새로운 뱃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 말라바르 해안(캘리컷)에 도착한 것은, 바로 이 후추와 향신료를 향한 항해의 결과였습니다.11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향한 것도 인도의 향신료에 닿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는 대항해 시대의 상당 부분은 "후추를 더 싸게, 더 많이 손에 넣으려는" 경제적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
포르투갈의 독점 — 카사 다 인디아
원산지에 직접 닿는 뱃길이 열리자, 후추 무역의 주도권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포르투갈 왕실은 1497년 향신료 무역을 관리하는 카사 다 인디아(Casa da Índia)를 세우고, 1520년 이후 후추를 왕실 전매품으로 삼았습니다.12 16세기 대부분 동안 포르투갈은 유럽에 들어오는 후추의 75% 이상을 공급하며 바닷길을 장악했습니다. 다만 베네치아도 레반트 육로 교역을 이어 가 완전한 독점은 아니었고, 1570년 포르투갈이 인도 무역을 민간에 개방하면서 이 체제는 서서히 느슨해졌습니다.12
오늘날 — 베트남의 후추
재배지가 넓어지고 무역이 자유로워지면서, 후추는 차츰 값이 내려 누구나 쓸 수 있는 향신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후추 생산국은 인도가 아니라 베트남으로, 2023년 세계 생산량 약 85만 톤 가운데 30%가량을 차지합니다.13 베트남 중부 고원(닥락·잘라이 등)이 주요 산지이며, 브라질·인도네시아·인도가 그 뒤를 잇습니다.14 한때 금에 견주던 물건이 이제 어느 식탁에나 놓이게 된 것은, 그 자체로 후추 무역의 역사가 남긴 결과입니다. 향수에서 블랙페퍼가 여전히 귀하게 쓰이는 이유와 쓰임은 노트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주
[1] Mandy Aftel, Fragrant(향료 단원). 블랙페퍼가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고대에 매우 귀하게 여겨졌으며, 금처럼 교환 수단이자 공물로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2] Mandy Aftel, Fragrant(향신료 무역 단원). 사프란·블랙페퍼·생강이 향신료 무역의 핵심이었고, 초기 로마부터 중세와 르네상스까지 강한 향의 향신료에 대한 갈망이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3] Mandy Aftel, Fragrant(향신료 단원). 고대에 히포크라테스가 후추를 약재로 처방했다는 기록(J. Innes Miller, The Spice Trade of the Roman Empire)을 인용해, 후추가 일찍부터 약으로도 귀히 쓰였음을 전합니다.
[4] "Pepper," World History Encyclopedia. 기원후 70년 무렵 《에리트라해 항해기》가 인도 말라바르의 항구 무지리스에서 로마 동전과 후추를 맞바꾸던 모습을 전하고, 케랄라 파타남 유적의 로마 유물로 무지리스의 위치가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worldhistory.org/Pepper/
[5] "Indo-Roman Maritime Trade," Ancient History Sites. 상인들이 7월 이집트를 떠나 몬순을 타고 9월 인도에 닿았고, 스트라본이 로마가 해마다 120척을 인도로 보냈다고 기록했으며 후추선이 400톤급 대형선이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ancient-history-sites.com/roman/context/economy/indo-roman-maritime-trade/
[6] "Pepper," World History Encyclopedia. 플리니우스가 후추 등 동방 사치품 때문에 "인도가 매년 로마에서 5천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빨아 간다"고 한탄했다는 기록을 전합니다. https://www.worldhistory.org/Pepper/
[7]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스리랑카·향신료 단원). 스리랑카 서해안과 인도 케랄라(말라바르) 해안이 로마와 중세 유럽을 사로잡은 향신료 무역의 출발점이 된 "쌍둥이 향신료 해안"이며, 향신료가 처음에는 육로로, 이후 바닷길로 실려 나갔다고 설명합니다.
[8] "Long pepper," Wikipedia. 롱페퍼(Piper longum)가 검은 후추보다 먼저 퍼져 로마와 중세 유럽에서 16세기까지 인기를 누렸으나, 12세기부터 검은 후추에 밀려 14세기에 대체됐고 신대륙 고추의 확산으로 유럽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ong_pepper
[9] "Spice Trade in India," Emory Postcolonial Studies. 로마 이후 후추가 아랍 상인의 육로와 베네치아의 레반트 교역로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며 값이 치솟고 사치품으로 남았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scholarblogs.emory.edu/postcolonialstudies/2014/06/21/spice-trade-in-india/
[10] Mandy Aftel, Fragrant(향료 무역 단원). 900년 무렵 콘스탄티노플의 향료상 운영 규정에 후추가 취급 품목으로 올라 있어, 후추가 요리뿐 아니라 향료 산업의 핵심 재료였음을 보여 준다고 전합니다.
[11] "Vasco da Gama," Wikipedia. 바스쿠 다 가마가 1498년 5월 20일 인도 캘리컷(코지코드)에 도착해 유럽과 인도를 잇는 첫 직항 바닷길을 열었으며, 리스본으로 가져온 주된 산물이 검은 후추였다는 점을 전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Vasco_da_Gama
[12] "Casa da Índia," Wikipedia. 포르투갈 왕실이 1497년 카사 다 인디아를 세우고 1520년 이후 후추를 왕실 전매품으로 삼아 16세기 유럽 후추의 75% 이상을 공급했으며, 1570년 인도 무역을 민간에 개방하며 독점이 느슨해졌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asa_da_%C3%8Dndia
[13] "Black pepper," Wikipedia. 2023년 세계 후추 생산량 약 85만 5천 톤 가운데 베트남이 30%로 최대 생산국이며, 브라질이 그 뒤를 잇는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lack_pepper
[14] World Population Review, "Black Pepper Production by Country." 베트남이 세계 최대 후추 생산국이고 브라질·인도네시아·인도가 뒤를 잇는다는 국가별 생산 순위를 정리합니다. https://worldpopulationreview.com/country-rankings/black-pepper-production-by-coun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