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역사

레위니옹에서 아이티로, 베티버

인도의 뿌리 향에서 1950년대 이름을 알린 향수, 레위니옹의 시작과 아이티라는 본향, 그리고 남성 향의 표준이 되기까지 — 베티버가 지나온 역사를 따라갑니다.

베티버 향수 노트 일러스트

베티버의 역사는 한 풀의 뿌리가 인도에서 인도양의 섬을 거쳐 카리브해까지 건너간 이야기입니다. 오래도록 인도의 생활 속 향이었던 베티버는, 20세기에 향수의 이름난 재료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남성 향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 페이지는 그 여정을 따라갑니다. 베티버가 어떻게 향료가 되는지는 원료 페이지에서, 인도와 아이티의 문화 속 베티버는 문화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인도의 뿌리 향

베티버는 원래 인도의 향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오래도록 이 풀의 뿌리로 시원한 매트와 발(screen)을 엮고, 향주머니에 채우고, 다른 향을 붙잡는 고정제로 썼습니다.1 "쿠스(khus)"라 불린 이 뿌리는 향료이자 더위를 식히는 생활 재료였습니다(자세한 문화는 문화 페이지 참고). 한 조향사는 베티버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 잔뿌리를 향으로 써 온 풀"이라고 적습니다.2 서양이 베티버를 향수 원료로 주목하기 훨씬 전부터, 인도에서 베티버는 이미 삶의 향이었습니다.

1950년대 — 이름을 알린 향수

"베티버"라는 이름이 향수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입니다. 한 향의 역사가는 "베티버 향수는 버스 같아서, 1950년대 말에 한꺼번에 세 대가 몰려왔다"고 적었는데, 1957년 카르방(Carven)이 처음 베티버를 앞세운 향수를 내놓았고 겔랑(Guerlain)이 뒤를 이었습니다.3 겔랑의 베티버(Vétiver)(1961, 장폴 겔랑)는 원래 멕시코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졌고, 카르방·지방시와 함께 고전 베티버 향수의 삼대장으로 꼽힙니다.4 우디하고 신선한 이 향수들은, 그 향이 사실 열대 풀의 뿌리에서 온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 하게 할 만큼 세련된 것이었습니다.5 마침 1950년대는 남성이 "모험 잡지 속 흙과 땀에 뒤덮인 사나이" 같은 향을 원하던 시기였고,2 한 향의 역사가는 이 세 편의 베티버가 한꺼번에 나오면서 "남성 향수가 마침내 핵겨울에서 깨어났다"고 표현했습니다.6 이때부터 베티버는 하나의 향수 장르이자 남성 향의 대표 재료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레위니옹의 시작

베티버 재배가 산업이 된 첫 무대는 인도양의 레위니옹(Réunion) 섬이었습니다. 1865년 무렵 시작된 재배는 1920년대에 본격화되어, 식민지 정착민들이 바닐라·제라늄과 함께 베티버를 재배했습니다.7 전성기의 레위니옹은 세계 베티버 생산의 3분의 1을 책임질 만큼 중요한 산지였습니다.7 인도의 풀이 인도양의 섬에서 하나의 작물 산업이 된 것입니다. 훗날 인도네시아 자바도 아이티와 나란히 세계 베티버의 주요 산지가 되어, 더 어둡고 스모키한 자바 베티버로 이름을 알렸습니다.8 아프리카의 르완다도 베티버를 재배해 향료 시장에 공급하는 등, 인도의 이 풀은 여러 대륙의 작물이 되었습니다.9

전쟁이 바꾼 지도, 아이티라는 본향

제2차 세계대전은 베티버의 지도를 다시 그렸습니다. 새롭고 먼 산지가 개발되었고, 그곳이 오늘날까지 베티버의 본향으로 남은 카리브해의 섬 아이티(Haiti)입니다.7 이 성공에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1930년 프랑스인 뤼시앵 가노(Lucien Ganot)가 레위니옹의 모종을 아이티에 처음 들여와, 십 년 만에 증류소 네 곳을 세웠습니다. 그 뒤를 이은 루이 드조이(Louis Dejoie)는 아이티 농업의 선구자로, 베티버가 지역 농민에게 줄 기회를 확신하고 재빠르게 플랜테이션과 증류소를 세웠습니다.7 인도에서 레위니옹으로, 다시 아이티로 — 한 풀의 뿌리가 세 대륙을 건넌 셈입니다.

5만 가구의 생계

아이티에서 베티버는 단순한 작물이 아닙니다. 약 5만 가구의 농민이 베티버로 생계를 잇습니다.10 한 향료업자가 아이티의 어려운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아이티는 힘들지만 베티버 산업은 잘되고 있다. 이 향유가 5만 가구에게 생계를 준다"고 답했다는 일화는, 이 향이 한 나라 경제에서 갖는 무게를 보여 줍니다.10 2010년 대지진 이후의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베티버 밭에서 뿌리를 캐는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남성 향의 표준이 되다

향수의 역사에서 베티버는 특히 남성 향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한 평론가는 겔랑의 오리지널 베티버 를 두고 당대 "그 계열 최고의 향으로, 신선하고 섬세하며 원료에 더없이 충실하면서도 어엿한 향수"였다고 평했습니다.11 이후 샤넬의 시코모어(Sycomore, 2008) 는 별 다섯을 받은 "스모키 베티버"로, 톰 포드의 그레이 베티버 는 현대적인 우디로 이 향을 재해석했습니다.12 마르고 투명한 우디 향이 "현대 남성 향의 새로운 기준"이 되면서, 베티버는 그 흐름의 중심에 섰습니다. 인도의 생활 향이 세계 남성 향의 표준이 된, 긴 여정의 도착점입니다.

뿌리가 건너온 세 대륙

베티버의 역사는 "뿌리내림"과 "옮겨감"이 겹친 이야기입니다. 인도에 뿌리내린 향이 레위니옹으로 옮겨가고, 다시 아이티에 새로 뿌리내렸습니다. 땅을 붙드는 그 깊은 뿌리처럼, 베티버는 가는 곳마다 한 지역의 삶과 경제에 단단히 뿌리내렸습니다. 향수 속 베티버의 흙 향 뒤에는, 이렇게 세 대륙을 건너온 뿌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1] George William Askinson, Perfumes and Their Preparation, "Vetiver" 항목. 인도 원산 풀의 뿌리인 베티버(쿠스쿠스)로 향기로운 매트를 엮고, 향주머니에 채우며, 휘발성 향의 고정제로 썼다고 설명합니다.

[2] Lizzie Ostrom, Perfume: A Century of Scents, "The Gentlemanly Perfume". 1950년대 말 카르방을 필두로 베티버 향수가 "버스처럼 한꺼번에" 쏟아졌고, 이 시기 남성이 "모험 잡지 속 흙과 땀에 뒤덮인 사나이" 같은 향을 원했다고 설명합니다.

[3] Lizzie Ostrom, Perfume: A Century of Scents 및 베티버 향수 역사 자료. 1957년 카르방이 처음 베티버를 앞세운 향수를 내놓았고 겔랑이 뒤를 이었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fragrantica.com/perfume/Carven/Vetiver-3468.html

[4] 베티버 향수 역사 자료(Perfume Shrine·Fragrantica). 겔랑 베티버(1961, 장폴 겔랑)가 멕시코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졌고 카르방·지방시와 함께 고전 베티버 향수의 삼대장으로 꼽힌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perfumeshrine.blogspot.com/2008/08/vetiver-series-3the-historical.html

[5]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Land of Darkness and Light: Haitian vetiver". "베티버"라는 말이 1950년대 말 카르방·겔랑의 베티버 향수 성공으로 널리 알려졌고, 우디·프레시한 이 향이 열대 풀의 뿌리에서 온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6] Lizzie Ostrom, Perfume: A Century of Scents, "The Gentlemanly Perfume". 1950년대 말 세 편의 베티버가 한꺼번에 나오면서 "남성 향수가 마침내 핵겨울에서 깨어났다"고 표현한 대목을 전합니다.

[7]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Land of Darkness and Light". 레위니옹의 베티버 재배(1865년경 시작, 1920년대 본격화, 전성기 세계 생산의 3분의 1),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티의 부상, 1930년 뤼시앵 가노와 루이 드조이의 역할을 전합니다.

[8] 베티버 산지 자료(Fragrantica). 인도네시아 자바가 아이티와 나란히 세계 베티버의 주요 산지가 되어 더 어둡고 스모키한 자바 베티버로 알려졌다는 점을 정리합니다. https://www.fragrantica.com/notes/Vetiver-12.html

[9]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베티버 관련 대목. 아프리카 르완다도 베티버를 재배해 향료 시장에 공급한다는 점을 전합니다.

[10]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Land of Darkness and Light". 아이티에서 베티버가 약 5만 가구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일화와 지진 이후의 어려움을 전합니다.

[11]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A-Z Guide, "Vetiver pour Elle"(Guerlain) 평. 겔랑의 오리지널 베티버가 당대 "그 계열 최고의 향으로, 신선하고 섬세하며 원료에 충실하면서도 어엿한 향수"였다고 평한 대목을 전합니다.

[12]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A-Z GuidePerfumes the Guide 2018, "Sycomore"(Chanel) 등. 샤넬 시코모어(2008)를 별 다섯의 "스모키 베티버"로, 톰 포드 그레이 베티버를 현대적 재해석으로 다루며 마르고 투명한 우디가 남성 향의 새 기준이 된 흐름을 설명합니다.

베티버를 더 깊게 읽기

향수 역사레위니옹에서 아이티로, 베티버인도의 뿌리 향에서 1950년대 이름을 알린 향수, 레위니옹의 시작과 아이티라는 본향, 그리고 남성 향의 표준이 되기까지 — 베티버가 지나온 역사를 따라갑니다. 향 문화쿨링 매트에서 부두교까지, 베티버더위를 식히는 인도의 쿠스 매트와 아유르베다의 향, 아이티의 삶과 부두교, 차분함의 아로마테라피, 그리고 남성 향의 상징까지 — 베티버가 문화 속에서 지녀 온 의미를 정리합니다. 향 원료풀뿌리에서 향으로 — 베티버열대 풀의 뿌리에서 나오는 베티버 — 침식을 막는 깊은 뿌리, 곡괭이로 캐는 수확, 아이티라는 본향, 패출리를 닮은 흙과 나무의 향까지 원료의 길을 따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