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원료

한 방울의 재스민

그랑디플로룸과 삼박, 앙플뢰라주와 용매 추출, 800만 송이의 산수와 인돌까지 — 흰 꽃 재스민이 향료가 되는 원료의 길을 따라갑니다.

재스민 향수 노트 일러스트

재스민은 향수에서 "없으면 안 되는 꽃"으로 불립니다. 프랑스 조향계에는 "재스민 없이는 향수도 없다(No perfume without jasmine)"는 오래된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1 그런데 그 한 방울의 재스민 앱솔루트를 얻기까지는 수백만 송이의 꽃과, 기름에 향을 재우던 오래된 기술과, 어둠에 가까운 분자 하나가 필요합니다. 이 페이지는 흰 꽃이 향료가 되는 그 길을 따라갑니다. 재스민이 향수 안에서 어떤 향으로 쓰이는지는 노트 페이지에서, 향수의 역사 속 재스민은 역사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흰 꽃, 밤에 피는 재스민

재스민(Jasminum)은 물푸레나무과(Oleaceae), 즉 올리브와 같은 과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열대와 아열대의 구대륙에 약 200종이 분포하고, 대부분 흰색이거나 흰색에 분홍·노랑이 살짝 도는 꽃을 피웁니다. 많은 종이 나방을 부르기 위해 밤에 향을 피우고, 긴 관 모양의 꽃부리를 가졌습니다.2 "밤에 향이 짙어지는 꽃"이라는 재스민의 이미지는 이 식물학적 특성에서 나옵니다.

두 개의 재스민 — 그랑디플로룸과 삼박

향료에서 쓰는 재스민은 크게 두 종입니다. 하나는 재스민 그랑디플로룸(Jasminum grandiflorum)으로, 스패니시 재스민·카탈로니안 재스민·로열 재스민으로도 불립니다. 인도 히말라야 산맥 하부 계곡이 원산이고, 무어인을 통해 스페인으로 전해진 뒤 야생 재스민(J. officinale)에 접붙여져 17세기에 지중해 전역으로 퍼졌습니다.3 향은 달콤하고 풍성한 플로럴입니다.

다른 하나는 재스민 삼박(Jasminum sambac), 아라비안 재스민입니다. 그랑디플로룸보다 더 초록빛이 돌고 과일 같은 결이 강하며, 인도의 신부 머리 장식과 재스민차의 꽃이 바로 이 삼박입니다.4 꽃잎이 겹으로 피는 "그랜드 듀크 오브 투스카니(Grand Duke of Tuscany)" 품종은 작은 장미처럼 보일 만큼 아름답습니다.4 같은 재스민이라도 종에 따라 결이 달라서, J. auriculatum은 인돌이 많아 더 어둡고, J. flexile은 메틸 살리실레이트 때문에 민트 같은 결이 돕니다.4

증류가 안 되는 꽃

재스민 원료 이야기의 출발점은 "이 꽃은 증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시트러스나 허브와 달리, 재스민 꽃은 너무 연약해서 수증기 증류의 높은 열을 견디지 못합니다. 열을 가하면 우리가 아는 그 향이 망가집니다.5 그래서 재스민은 열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향을 빼내야 했고, 이 제약이 재스민 특유의 추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앙플뢰라주 — 기름에 재우는 향

용매 추출이 발명되기 전, 재스민의 향은 앙플뢰라주(enfleurage)로 얻었습니다. 향 성분이 기름에 녹아드는 성질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나무틀에 끼운 유리판 양면에 라드나 우지 같은 굳기름을 바르고, 그 위에 갓 딴 재스민 꽃을 얹습니다. 꽃이 시들면 새 꽃으로 갈아 얹기를 반복하며, 기름이 향을 충분히 머금을 때까지 며칠에서 몇 주를 이어 갑니다.5 향을 머금은 기름(포마드)을 알코올로 씻어내면 향만 남습니다.

앙플뢰라주는 아름답지만 손이 많이 가고 느린 방식이었습니다. 한 조향가는 이 과정을 "환상적이었다. 다시 살려내고 싶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6 오늘날에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재스민이라는 꽃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하는 재료인지를 보여 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용매 추출 — 콘크리트와 앱솔루트

19세기 말부터 앙플뢰라주의 기름은 벤젠·헥산 같은 더 효율적인 용매로 대체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재스민 추출의 표준입니다.6 휘발성 용매로 꽃에서 향을 빼내면, 먼저 왁스가 섞인 반고체 상태의 콘크리트(concrete)가 나오고, 이것을 알코올로 다시 씻어 왁스를 걷어내면 재스민 앱솔루트(absolute)가 됩니다.7 재스민처럼 섬세한 꽃에서 향을 얻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이 용매 추출입니다.

800만 송이의 산수

재스민이 값비싼 이유는 그 수율에 있습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손으로 딴 재스민 꽃 약 800만 송이(약 1,000킬로그램)로 콘크리트 약 2.3킬로그램을 얻고, 여기서 앱솔루트 약 1킬로그램이 나옵니다.8 꽃은 봉오리 상태로 따서, 24시간 뒤 시장으로 옮겨지는 동안 피어납니다. 아침 일찍 딴 꽃일수록 좋은 값을 받습니다.9 한 방울의 재스민 뒤에 수백만 번의 손길이 있는 셈입니다.

향을 만드는 분자 — 어둠이 빛을 살린다

재스민 향의 비밀은 역설적이게도 어둠에 있습니다. 흰 꽃에는 인돌(indole)이라는 분자가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은 홀로 맡으면 잉크처럼 어둡고 심지어 배설물 같은 결을 냅니다.10 그런데 이 어두운 분자가 미량 섞이면서 재스민의 플로럴을 깊고 울림 있게 만듭니다. "어둠이 빛을 살린다"는 표현이 재스민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11

인돌 외에도 재스민 향에는 재스몬(jasmone)과 메틸 재스모네이트(methyl jasmonate) 같은 재스모네이트 계열, 상쾌한 메틸 살리실레이트, 크리미한 락톤(lactone), 그리고 벤질 아세테이트(benzyl acetate)가 함께 어우러집니다.1112 재스모네이트는 원래 재스민 꽃이 나방을 부르기 위해 내는 분자이기도 합니다.

합성 재스민 — 에디온이라는 전환

재스민 앱솔루트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20세기 조향은 재스민의 결을 합성 분자로 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대표가 메틸 디하이드로재스모네이트(methyl dihydrojasmonate), 상표명으로 널리 알려진 에디온(Hédione)입니다. 은은하고 투명한 재스민·시트러스 느낌을 주는 이 분자는 1960년대 이후 조향의 판도를 바꿀 만큼 널리 쓰였고, 디올 Eau Sauvage(1966) 같은 향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13 에디온을 비롯한 합성 재스민 분자들 덕분에, 값비싼 천연 앱솔루트를 넉넉히 쓰지 못하는 향수에서도 재스민의 빛을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천연 앱솔루트의 복합적인 깊이는 여전히 합성만으로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아서, 조향사는 목적과 예산에 따라 둘을 함께 씁니다.

살아 있는 꽃을 담다 — 헤드스페이스

20세기 후반에는 재스민을 "꺾지 않고" 담는 방법도 생겼습니다. 헤드스페이스(headspace) 기술입니다. 살아서 피어 있는 꽃 주위의 공기를 포집해 성분을 분석하고, 그 향을 실험실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입니다.14 앙플뢰라주와 용매 추출이 "딴 꽃"의 향을 붙잡는다면, 헤드스페이스는 "가지에 피어 있는 꽃"의 향을 읽어냅니다. 딴 뒤 향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재스민 같은 꽃에서, 이 기술은 생화에 더 가까운 인상을 얻는 길을 열었습니다. 다만 헤드스페이스는 분석과 재현의 도구이지 천연 원료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어서, 조향에서는 천연 앱솔루트와 함께 참조 자료처럼 쓰입니다.

규제와 안전

재스민 앱솔루트에는 벤질 아세테이트, 벤질 벤조에이트, 벤질 살리실레이트, 이소유제놀 같은 성분이 들어 있고, 이 중 일부는 유럽연합 화장품 규정이 정한 향료 알레르겐 표기 대상입니다. 그래서 재스민이 많이 든 향수의 성분표에서 이 이름들을 보게 됩니다.15 이는 원료에 자연히 들어 있는 성분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한 표기이며, 완성 향수 속 재스민 노트가 곧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1] Elise Vernon Pearlstine, Scent: A Natural History of Fragrance, 재스민 단원. 재스민 앱솔루트가 향수의 3대 원료 중 하나로 꼽히며 "재스민 없이는 향수도 없다"는 프랑스 격언이 인용됩니다.

[2] Elise Vernon Pearlstine, Scent: A Natural History of Fragrance, 재스민 단원. 재스민이 물푸레나무과(올리브 과)에 속하고 구대륙 열대에 약 200종이 분포하며, 나방 수분을 위한 관 모양 꽃과 흰 꽃 특성을 설명합니다.

[3] Günther Ohloff · Wilhelm Pickenhagen · Philip Kraft, Scent and Chemistry: The Molecular World of Odors, "Jasmine Notes in Perfumery". Jasminum grandiflorum이 인도 히말라야 하부 계곡 원산이고 무어인을 통해 스페인에 전해져 J. officinale에 접붙여지며 17세기 지중해로 퍼졌다고 설명합니다.

[4] Elise Vernon Pearlstine, Scent: A Natural History of Fragrance, 재스민 종 비교 단원. 그랑디플로룸의 달콤한 플로럴, 삼박의 초록·과일 결, J. auriculatum의 높은 인돌, J. flexile의 메틸 살리실레이트, "Grand Duke of Tuscany" 겹꽃 품종을 설명합니다.

[5] Mandy Aftel, Fragrant: The Secret Life of Scent, 재스민·앙플뢰라주 단원. 재스민 꽃이 수증기 증류를 견디지 못하는 이유와, 유리판에 굳기름을 발라 향을 흡수시키는 앙플뢰라주 과정을 설명합니다.

[6]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The Master and the White Flower". 19세기 말 앙플뢰라주의 기름이 벤젠·헥산 용매로 대체된 과정과, 전통 방식을 그리워하는 조향가의 회상을 전합니다.

[7]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A-Z Guide, "absolute" 항목. 재스민처럼 섬세한 재료에서 용매로 콘크리트를 얻고 알코올로 씻어 앱솔루트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8] Günther Ohloff 외, Scent and Chemistry, "Jasmine Notes in Perfumery". 손으로 딴 재스민 약 800만 송이(약 1,000kg)로 콘크리트 약 2.3kg, 앱솔루트 약 1kg을 얻는다는 수율을 제시합니다.

[9] Dominique Roques, In Search of Perfumes, "The Master and the White Flower". 재스민을 봉오리로 따 24시간 뒤 시장으로 옮기고, 이른 아침에 딴 꽃이 좋은 값을 받는 인도 산지 풍경을 전합니다.

[10]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용어 "indole". 인돌이 흰 꽃과 배설물에 함께 존재하는, 잉크처럼 어둡고 쓴 냄새의 분자라고 설명합니다.

[11] Elise Vernon Pearlstine, Scent: A Natural History of Fragrance, 재스민 향 성분 단원. 재스모네이트·메틸 살리실레이트·락톤이 재스민의 플로럴·프레시·크리미함을 만들고, 미량의 인돌이 향을 깊게 한다("어둠이 빛을 살린다")고 설명합니다.

[12] A. J. Jouhar · W. A. Poucher, Poucher's Perfumes, Cosmetics and Soaps, Volume 1, "Benzyl Acetate"·"Jasmone"·"Methyl Jasmonate" 항목. 벤질 아세테이트와 재스몬·메틸 재스모네이트가 재스민 향의 핵심 성분으로 다뤄집니다.

[13] Günther Ohloff · Wilhelm Pickenhagen · Philip Kraft, Scent and Chemistry: The Molecular World of Odors, 재스민·헤디온 단원. 메틸 디하이드로재스모네이트(Hédione)가 투명한 재스민 느낌을 주는 합성 분자로 널리 쓰이며 Eau Sauvage(1966) 등에서 활용된 맥락을 설명합니다.

[14] Luca Turin · Tania Sanchez, Perfumes the Guide 2018, 헤드스페이스 관련 단원. 로만 카이저가 발전시킨 헤드스페이스 기술이 살아 있는 꽃 주위 공기의 향을 포집·분석해 향을 재구성하는 방식임을 설명합니다.

[15] European Commission, "Fragrance allergens in cosmetic products" 및 EU Regulation (EC) No 1223/2009. 벤질 아세테이트·벤질 벤조에이트·벤질 살리실레이트·이소유제놀 등 향료 알레르겐이 일정 농도를 넘으면 성분표에 표기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https://single-market-economy.ec.europa.eu/sectors/cosmetics/cosmetic-products-specific-topics/fragrance-allergens-labelling_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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