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향수 이전에 이미 유럽과 아시아의 오래된 식탁 위에 있는 과일입니다. 루이 15세의 궁정에서 사랑받은 페어 콩피와 페어 사이다, 한국 차례상의 배와 나주의 가을 오후, 일본의 나시와 중국의 리, 영국 정원의 프리지아 옆에 심어진 페어 나무 — 이 두터운 일상의 층 위에 20세기 향수의 페어가 놓여 있습니다. 이 페이지는 그 결들을 정리합니다. 페어가 어떻게 향료가 되는지는 원료 페이지에서, 19세기 이래의 향수사는 역사 페이지에서 다룹니다.
유럽의 오랜 사치품 — 페어 콩피와 페어 사이다
유럽에서 배는 오랫동안 왕과 귀족의 식탁 위의 사치품이었습니다. 로마 시대부터 배는 요리와 디저트의 재료였고, 중세 프랑스에서는 서양 배를 설탕에 조려 만든 페어 콩피(pear confit) 가 궁정의 대표 디저트 중 하나였습니다.1 특히 루이 15세(재위 1715~1774)의 궁정에서는 배 재배가 크게 유행해, 왕이 자신의 정원에서 새로운 품종을 개량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시기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개량된 여러 배 품종들 — 뒤셰스 당굴렘, 콩페랑스, 도얀느 뒤 코미스 — 이 지금까지도 유럽 시장의 대표 배 품종으로 남아 있습니다.
같은 시기 잉글랜드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배로 만든 사이다인 페리(perry) — 페어 사이다 — 가 사과 사이다와 함께 지방의 대표 음료로 자리잡았습니다. 페어의 즙을 발효시켜 만든 이 부드럽고 달콤한 술은 지방 축제의 상징이었고, 오늘도 잉글랜드 서부와 노르망디에서 소규모로 생산됩니다. 향수 안의 페어가 종종 "약간 발효된 결"을 지닐 때, 그 뒤에는 이 오랜 페리의 감각이 함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배 — 차례상과 나주의 가을
한국에서 배는 차례상의 대표 과일입니다.2 명절 상에 사과와 감, 대추와 함께 놓이는 이 노란 열매는 한국인이 조상에게 올리는 가장 오래된 상차림의 일부입니다. 배의 하얗고 시원한 살, 은은한 단맛과 아삭한 식감은 한국인이 "청량함"을 표현할 때 자주 떠올리는 감각이고, 이 감각이 한국 요리 안에서 김치와 냉면의 국물, 불고기의 양념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습니다. 배는 한국 문화 안에서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속을 시원하게 하는 감각"의 대명사입니다.
특히 전라남도 나주(羅州) 는 한국 배의 상징적 산지입니다. 나주 평야의 넓은 배 과수원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랜 재배 지역이고, 오늘도 한국 배 생산의 큰 부분을 담당합니다. 나주 배는 크고 즙이 많으며 은은하게 단맛이 도는 결로 유명하고, 매년 가을 배꽃 축제와 배 수확 축제가 이 지역의 대표 이벤트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 소비자가 향수 라벨의 "페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결은, 유럽의 조리된 배가 아니라 이 나주의 시원한 아시아 배일 확률이 높습니다.
일본의 나시(梨)와 중국의 리(梨)
일본에서 배는 나시(梨, なし) 라 불립니다. 한국의 배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배(Pyrus pyrifolia)가 주력이며, 특히 도토리처럼 둥근 모양이 특징인 20세기 나시는 20세기 초 지바현에서 개량된 후 일본을 대표하는 배 품종이 되었습니다. 여름 끝에서 초가을 사이에 시장에 나오는 나시는 일본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알리는 감각적 신호로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습니다.
중국에서는 배가 리(梨, lí) 로 불리며, 이 발음이 "이별"을 뜻하는 리(離)와 같아서 흥미로운 문화적 관습이 자리잡았습니다.3 한 배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것이 "이별"을 부른다고 여겨져,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배를 통째로 한 사람이 먹거나 서로 나누지 않고 각자 하나씩 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같은 아시아 배가 한국의 차례상에서는 "조상과 나누는 과일"이고, 중국에서는 "나누지 않는 과일"이 된 이 문화적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배꽃 — 봄의 상징
배는 열매뿐 아니라 꽃도 문화적 자리를 지녀 왔습니다. 배꽃(梨花) 은 하얗고 청초한 봄의 꽃으로, 동아시아 문학과 미술의 오랜 소재입니다. 한국의 이화여자대학교의 이름이 이 배꽃에서 왔고, 서울의 이화동과 조선 왕조의 상징 문양 중 하나였던 이화문(李花紋, 실은 자두꽃이지만 배꽃과도 자주 혼동됨)까지 이어집니다. 봄에 한꺼번에 하얀 꽃을 피운 배 나무의 모습은 한국·중국·일본의 오래된 봄 풍경 중 하나이고, 이 풍경이 향수 안의 페어 노트에 어딘가 우아하고 청초한 결이 함께 있는 배경일지도 모릅니다.
젊음의 향수 — 페어와 프루티 플로럴의 만남
향수 안에서 페어는 오래도록 "젊은 여성을 위한 우아한 단맛"의 자리에 있어 왔습니다. 1998년 안니크 구탈이 딸을 위해 만든 쁘띠 셰리(Petite Chérie)가 이 흐름의 결정적 순간을 만들었고, 이후 2000년대 프루티 플로럴 향수의 폭발적 확산 안에서 페어는 "젊은 여성용 데일리 향"의 상징 노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이미지는 부모가 딸에게 선물하는 향수, 첫 향수를 사는 20대 여성, 데뷔하는 신인 배우의 광고 향수 같은 소비의 여러 자리와 연결됐고, 페어라는 단어에 어딘가 순수하고 미숙한 감각을 함께 얹었습니다.
조 말론의 페어 앤 프리지아 — 영국 정원의 가을
21세기 니치 향수 시장에서 페어의 이미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확장됐습니다. 조 말론의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English Pear & Freesia, 2010) 는 페어를 프리지아와 결합해 "영국 시골 정원의 가을 오후" 같은 우아하고 성숙한 결을 만들었습니다. 이 향수의 큰 성공은 페어가 반드시 "젊은 여성용 프루티 플로럴"에 갇힐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이 노트가 어른의 데일리 향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이후 조 말론의 여러 페어 향수 — 페어와 팁시 프리지아, 페어 카시스 등 — 가 시즌별로 이어지면서 페어는 "영국적 우아함"의 신호로도 자리잡았습니다.
'페어'라는 단어가 데려오는 결
향수 라벨에 "페어"가 적혀 있을 때, 그것은 사실 여러 결의 문화적 이미지를 동시에 데려옵니다. 루이 15세 궁정의 페어 콩피, 노르망디의 페리, 한국 차례상의 노란 배, 나주 평야의 가을 오후, 일본의 나시와 중국의 리, 그리고 젊은 여성의 첫 향수, 영국 시골 정원의 가을 — 이 모두가 하나의 이름 안에 접혀 있습니다. 좋은 페어 향수는 이 여러 결 사이에서 하나의 감각 — "친숙한 단맛에 얹힌 약간의 우아함" — 을 향으로 정확하게 옮깁니다. 오늘 우리가 향수병을 열 때 만나는 그 아삭한 페어의 첫 인상 뒤에, 이 두터운 유럽과 아시아의 오랜 이야기가 조용히 함께 열립니다.
두 개의 배, 하나의 이름
마지막으로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향수 라벨의 "페어"는 대개 유럽 페어(Pyrus communis)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 향수업의 어휘이지만, 아시아 소비자가 이 단어를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자기 문화의 아시아 배(Pyrus pyrifolia)를 떠올립니다. 실제 두 배의 향은 조금 다르고 — 유럽 배가 부드럽고 조리된 결이라면 아시아 배는 아삭하고 시원한 결에 가깝습니다 — 향수 안의 페어는 이 두 감각 사이 어딘가에 자리잡습니다. 한 단어 뒤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배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페어라는 노트를 각 문화 안에서 조금씩 다르게 살아 있는 향으로 만들어 줍니다.
주
[1] "Pear," Wikipedia; 프랑스 배 재배사 자료.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유럽의 배 재배 전통과 중세 프랑스 궁정 요리의 페어 콩피, 특히 루이 15세(1715~1774) 궁정에서 배 재배가 크게 유행해 왕이 자신의 정원에서 새 품종을 개량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 프랑스·벨기에에서 개량된 뒤셰스 당굴렘·콩페랑스·도얀느 뒤 코미스 같은 품종이 오늘까지도 유럽 시장의 대표 배 품종으로 남아 있다는 배 재배사의 배경을 정리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ear
[2] 한국 세시풍속 및 차례상 자료. 한국의 차례상에 배가 사과·감·대추와 함께 놓이는 오랜 관습, 그리고 전라남도 나주가 조선 시대 이래 한국 배의 대표 산지로 자리잡아 매년 가을 배꽃 축제와 수확 축제가 지역의 대표 이벤트가 되어 왔다는 문화적 배경을 정리합니다.
[3] 중국 문화 관습 자료. 중국어로 배(梨, lí)의 발음이 "이별"을 뜻하는 리(離)와 같아서 한 배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것이 이별을 부른다고 여겨져 각자 하나씩 받는 오랜 관습이 자리잡았다는 중국의 배 문화 관습을 정리합니다.
